<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평범한 사람이 악인이 되는 과정
작가인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소개한다. 이는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가 한두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이 단 한 번 등장하는 <국부론>과 같다. 하지만 두 책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말이라는 것은 결국 농도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여느 고전과 마찬가지로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그가 나치에 가입하여 유대인을 학살하고, 남미로 망명했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을 언도받는지의 과정을 세세한 문장으로 엮어내었다. 아마 아이히만 본인보다도 더 그의 행적을 잘 알고 있는 이가 한나 아렌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순한 기록문으로만 보면 지루한 책이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앞서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통찰을 이끌어낸다. 이는 유대인이자 정치사상가였던 한나 아렌트의 고민이 집약된 단어이다. 사실 아이히만은 평범한 장교 출신의 공무원이다. 특별히 유대인에 대해 증오심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수십, 수백만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내몬 장본인이 되었고 재판장에 섰다.
예루살렘의 재판장에서 그는 당당했다. 사형을 언도받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렇게 주장할 수는 있었다. 자신은 그저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라고.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을 묵묵히 수행했을 따름이라고.
자, 여기 수십, 수백만의 사람을 죽인 남자가 서 있다. 그가 말한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납득이 가질 않는다. 어떻게 이런 평범한 사람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연쇄살인마나 테러리스트도 아닌데 말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설명한다. 평범한 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악을 탄생시킬 수 있다. 일종의 미필적 고의인 셈이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아이히만은 그가 열심히 내보낸 열차가 가스실로 향한다는 것을 몰랐다. 적어도 모른 척 했다. 그는 광신적인 나치 추종자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누구보다도 악인이 되었다.
지난한 재판 끝에 아이히만에게 교수형을 내린 판사는 판결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논증을 위해서 피고가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피고가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중략)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 아돌프 아이히만의 최종 판결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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