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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가 어른을 위한 동화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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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5. 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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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가 어른을 위한 동화인 이유


시간이 지나서 읽을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책이 있다. 대개는 문학 작품이 그렇다. <데미안>이나 이번에 얘기할 <어린 왕자>가 대표적이다. 웬만해선 책을 읽을 때 감정이 동하지 않는데 가슴이 먹먹했던 소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린 왕자>에는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어른을 위한 동화'다. 잔인하게 각색된 잔혹 동화도 아닌데 이유가 뭘까?


픽사의 영화나 <어린 왕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분명 쉬운 소설이다. 픽사의 영화 역시 서사 구조가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둘은 공통적으로 세태에 찌든 어른의 마음을 울릴만한 그 무언가가 있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그러다 보면 이 소설이 왜 어른을 위한 동화인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보통 어린 왕자 하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나 상자에 든 양을 떠올릴 것이다. 이는 어린 왕자가 가진 동심을 상징한다. 어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보이는 것만을 본다. 나이를 먹고 지식이 많아지면서 눈앞의 대상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휴리스틱이다. 휴리스틱이란 특정 상황에서 어림짐작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체계를 말한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는 꽤 유용한 방법이다.


하지만 동심은 그 대상이 품은 수많은 가능성을 함께 본다. 이 그림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일 수도, 모자일 수도, 식빵일 수도 있다. 자유롭게 빈 곳을 채워가며 나름의 인식 체계를 만들어간다. 어린아이들이 이른바 '상상 속의 친구'를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상상 속의 친구 빙봉이 사라지는 것,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키키가 고양이의 말을 못 듣게 되는건 어른이 되며 세상에 대한 인식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어른은 모든 것을 정의하고 분류한다. 그래서 친구 아버지의 연봉을 묻거나, 집의 평수를 묻는 그런 재미없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이들 역시도 정답을 찾지 못해 방황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술에 빠져 살고, 누군가는 권력을 위한 권력을 쥐고 있는 왕이 된다. 어린 왕자가 차례대로 만나는 사람들은 이러한 어른의 속성을 상징한다.


이 책을 보는 어른은 아이의 시선을 통해 자기 자신을 자각할 수 있게 된다. 한때는 어린아이였으나 이제는 다 자라버린 그 누군가를 말이다. 픽사의 영화 <토이 스토리>가 왜 그토록 가슴을 울리는지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는 어른들은 옛 추억과 함께 이미 나이가 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이 동화가 가진 가장 탁월한 메시지는 여우의 입에서 나온다. 지구를 여행하던 어린 왕자는 어느 날 여우를 한 마리 만난다. 그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임'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준다. 여우가 정의하는 길들임이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들임만이 누군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이는 어린 왕자가 마주한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장미가 하나 있다. 이 장미는 까탈스럽기 그지없으며 자기가 제일 잘난 양 가시를 뽐낸다. 어린 왕자는 열심히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았으리라. 그런데 지구에 와서 웬걸. 수천, 수만 송이의 장미가 피어있다. 그렇다면 어린 왕자의 장미는 뭐가 그리 특별할까?


여우에 따르면 이는 어린 왕자가 장미에 들인 노력과 책임에서 비롯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장미가 있지만 어린 왕자의 보살핌을 받은 장미는 단 한 송이뿐이다. 이는 둘 사이에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내고 이는 존재의 의미로 이어진다. 김춘수의 시 <꽃>이 생각난다. 오로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몸짓이 아닌 꽃이 된다.


이제 하늘의 별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저 어딘가에는 분명 그 장미가 기다리고 있는 어린 왕자의 별이 있을 테니 말이다. 관계만이 이 무의미한 세상에 의미를 만들어낸다.


어른은 무의미의 늪에서 의미의 탑을 쌓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그래서 돈, 권력, 하다못해 팔로워 수 등 자신을 증명할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노력은 관계를 맺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서은국 교수는 자신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의 원천을 관계로 정의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극상의 행복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사람은 먼 길을 돌아가는지도. 어른이 되어 동화 <어린 왕자>를 다시 펼쳐보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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