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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다섯 번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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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4. 1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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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다섯 번 읽고


난 인생의 분기점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어 왔다.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이다. <데미안>을 처음 접한 것은 동네 도서관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난 책을 참 좋아했더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통해 소설에 눈을 뜨고 이리저리 뒤적이던 참이었다. 사실 처음 읽은 <데미안>은 아동용이었다. 그래서 초장에 짧은 만화가 그려져 있었다. 흑백의 톤으로 정성스레 그려진 아브락사스의 모습이 나를 사로잡았다. 천사 같기도 하고, 악마 같기도 하고, 인간이자, 세계 그 자체인 모습이었다. 아브락사스는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다음 구절에 등장하는 악마이자 신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당시로써는 이 알쏭달쏭하기 짝이 없는 문장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나중에 절로 알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냥 한번 쓱 읽고 책을 덮었다. <데미안>과의 첫 만남은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났다. 마치 어린 싱클레어처럼 난 조금도 자라지 못했다.





알 껍데기에 금이 갔다


나이를 더 먹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여느 한국 학생이 그렇듯 학교에 갇혀 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시에 동아리를 빙자한 자습 모임이 있었는데, 명목상으로는 독서부라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한쪽 구석에 너덜너덜하게 꽂혀있는 <데미안>이 눈에 띄었다.


그제야 줄거리나 인물, 주제가 조금씩 드러났다.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빛의 세계에 사는 인물이다. 그 세계는 엄격한 기독교 집안, 도덕 규칙, 귀족, 천사, 신, 안정성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크로머라는 불량배에 의해 그 세계는 무너져버린다. 갑자기 타락했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세계의 다른 이면을 자각했을 따름이다. 세계는 도둑, 사기꾼, 살인자, 불량배, 악마, 혼돈이 같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이 사건은 싱클레어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뒤 싱클레어는 영적 동반자인 데미안을 따라 점점 성장하고 마침내 후반부에서 각성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싱클레어가 너무 부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 난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었으니까. 누군가 이렇게 옆에서 길을 일러주고 나를 키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나를 둘러싼 알의 껍데기에 조금 금이 갔다.





아브락사스가 날 기다린다


재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다. 이제야 자유를 얻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나도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비상할 줄 알았다. 하지만 초반의 흥분이 식고 대학이 일상이 되어갔다. 그렇게 신입생 시절부터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강의가 끝나면 학교 도서관을 찾아 책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데미안>이 생각났다. 그렇게 운명처럼 그 책을 다시 펼쳤다. 줄거리는 똑같다.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괴롭힘을 받다가 데미안에 의해 구원받는다. 그렇게 점점 데미안과 같이 각성한 존재가 되어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선과 악을 자각하고 그 둘이 뒤섞인 세계를 살아간다. 마치 신과 악마가 혼재된 아브락사스처럼. 조용히 책을 덮었다.


어쩌면 지금의 현실조차 하나의 파괴해야 할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라는 알을 깨고 마음껏 비상할 수 있는 대학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곳도 하나의 알이었다. 문득 동아리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이 동아리 안에서만 경험하고 사고하지 말라고. 이곳을 뛰어넘으라고.





다섯 번째 <데미안>


내겐 같이 나이를 먹어온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해리 포터> 시리즈이고 다른 하나는 <데미안>이다. 그래서 두 권의 책 모두 내게는 참 각별하다. 인생의 시기마다 매번 다르게 읽혔다. 특히 <데미안>은 더. 그래서 다섯 번이나 펼쳐 보았다. 사실 새로운 내용은 없다. 시간이 지난다고 문장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그동안 얼마나 변했나를 알 수는 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를 새삼 자각할 수 있다. 결국은 파괴해야 할 하나의 알 껍데기를.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곳 역시 종착지가 아니었다. 아니, 종착지가 되면 안됐다. 언제나처럼 <데미안>을 펼쳤다. 다섯 번째였다. 이번엔 조그마한 포켓북을 사서 지하철에서 읽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데미안처럼 신적인 존재가 될 수는 없다. 그저 한 마리의 새처럼 계속 알을 파괴하고 나아가야 한다. 아브락사스를 향해서. 딱 그만큼만 성장하게 된다. 성인 이후의 삶이 그렇다. 변화가 줄어들고 안주하게 된다. 특히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데미안>의 저 유명한 구절이 다르게 보인다. 다음에는 또 어떻게 읽힐까? <데미안>을 앞으로도 놓지 않을 이유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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