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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인류가 지구를 지배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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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4. 1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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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인류가 지구를 지배한 방법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유발 하라리는 인류를 이렇게 표현했다. 적어도 지구를 지배하기 전까지는. 인류는 그저 다른 육식동물이 먹다 남긴 잔해물을 뒤지던 약한 생물에 불과했다. <사피엔스>는 이런 사소한 존재가 어떻게 전 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는 대서사시다.


<사피엔스>는 기본적으로 역사책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와는 궤를 달리한다. 시야가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류의 탄생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아시아에서 남미 대륙까지 시공간적으로 대부분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이런 사상적 기조를 '빅 히스토리'라고 부른다. 인류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나 데이비드 크리스쳔의 <빅 히스토리>가 이 흐름에 해당하는 책이다. <총.균.쇠>는 서양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느냐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지리적, 환경적 요인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한다. <빅 히스토리>는 말 그대로 인류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모든 것의 시작인 빅뱅부터 현대 사회에 걸친 방대한 역사를 깔끔하게 담아낸다. 





인류는 어떻게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나?


다시 <사피엔스> 이야기로 돌아오자. 분명 인류는 대단치 않은 동물이었다. 하늘을 날거나, 독을 뿜거나, 날카로운 발톱이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인류는 협력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지만 많은 수가 합쳐지면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만약 1:1로 싸운다면 침팬지가 인간을 가볍게 이길 것이다. 하지만 침팬지 1,000마리와 인간 1,000명이 싸운다면 인류의 압승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 <사피엔스>는 크게 뒷담화와 신화를 이야기한다. 인간은 우선 뒷담화를 통해 주변 사람과의 친분을 유지했다. 마치 침팬지가 서로의 털을 골라주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던바의 수 때문이다. 이는 인류학자인 던바가 발견한 것인데, 한 인간이 사적인 친분을 유지할 수 있는 수가 150명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아무리 큰 영장류의 무리도 그 개체가 150마리를 넘지 않는다.


이때 등장하는 게 바로 신화다. 신화는 상호주관적인 믿음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같이 믿으면 실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피엔스>는 종교, 화폐, 국가 등을 가장 대표적인 신화로 꼽는다. 미국이라는 상상의 산물을 증오하는 중동의 테러리스트도 똑같은 신화인 미국 달러는 좋아한다. 침팬지는 가상의 바나나나 천국에서 얻게 될 바나나를 위해 손에 들고 있는 바나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인지적인 능력이 오로지 현실에만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벽을 넘었고 엄청난 규모의 협력 시스템을 건설했다. 그리고 지구를 지배했다.





인류는 앞으로 무엇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피엔스는 그 뒤부터 다른 것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우선 농업 혁명이 시작된 이후로는 밭에 있는 작물에 귀속된 삶을 살아간다. 들판과 숲을 누비며 먹을 것을 찾던 인류는 이제 허리를 숙여 물을 대고 잡초를 뽑아야 했다. 인류가 곡식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곡식이 인간을 길들였다. 이제 기근이 들면 인류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 뒤로는 제국의 지배가 이어졌다. 제국은 비록 상상의 산물이었지만 사피엔스의 삶을 좌지우지했다.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 대영 제국 등 바야흐로 제국의 시대였다. 이제 세계적인 제국은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지만, 그 흔적만은 곳곳에 남아있다.


이제 현생 인류는 강화 인간과 인공지능이라는 또 다른 주인을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들이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지배체계는 어디까지나 신화에 기반했다. 왕은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피지배계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의 도움을 받아 유전적으로 우월하게 태어난 인간은 어떤가? 만약 이들이 강화된 지능과 힘을 앞세워 인류를 지배한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가? 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는 유발 하라리의 후속작인 <호모 데우스>에서 더 자세히 펼쳐진다.


<사피엔스>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끝이 난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의 인류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어떤 세상이 앞으로 펼쳐질까? 좋든 나쁘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일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를 내놓은 이유는 이런 미래를 읽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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