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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육상 생활 후기

정보 & 썰/해군

by 법칙의 머피 2020. 3. 2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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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육상 생활 후기


해군 수병은 통상적으로 6개월을 전후해 함정 근무 생활을 하게 된다. 그 기간 이후에도 누군가는 군함에 남아 남은 군 생활을 마치고, 다른 누군가는 다른 육상부대에 배치된다. 어느 정도 가늠이라도 해볼 수 있었던 함정 생활과는 다르게 육상 생활은 정말 말 그대로 종잡을 수가 없다. 꼭 내가 머물렀던 함대에 배치되는 것도 아니고, 내 기존 주소지와도 하등 상관이 없다. 해군부대가 있는 곳을 따라 대부분은 바닷가에 있는 어느 도시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은 자신의 직별에 따라 그에 맞는 곳으로 가기 마련이다. 만약 자신이 병기병이라면 탄약고나, 사격장 등으로 가게 되며 전탐병의 경우 레이더 기지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군대에서 100%는 없다. 자신의 특기와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배치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든든한 빽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마음을 내려놓자. 참고로 수병들이 부대를 옮기는 인사철만 되면 각 부대 인사과 전화기는 불이 난다고 한다. 보통 나 어디 누군데 내 사돈의 팔촌의 옆집 동생의 선생님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함정 생활 vs 육상 생활


바다에서 실컷 고생하고 나서 육상으로 오면 우선 잠자리도 편하고, 많은 면에서 생활이 참 좋아진다. 종교가 있다면 매주 교회나 절도 갈 수 있고, 헬스장도 이용할 수 있다. 잊지 말자. 사람은 육상동물이다. 참고로 밥은 더 맛없어진다. 함정에 비해 부식비가 적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배에서 밥이 맛있었던 거지 이게 원래 정상적인 군대 식단이라고 생각하자. 괜히 짬밥이 아니다. 대신 매점은 더 자주 갈 수 있으니 위안을 삼을 수밖에. 당연히 항해 수당도 못 받는다. 때문에 육상 근무를 시작하면 적자가 나는 경우가 많다.







육상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대부분 일병을 거의 끝마쳤을 것이다. 이제 상병으로 넘어가는 언저리에 접어든다. 그러면 이제 군 생활이 끝났다는 착각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육상 생활은 훈련소, 후반기 교육, 함정 생활을 합친 것보다도 더 길다. '이상하다, 끝날 때가 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아직 멀었다. 포기하고 있어도 멀었다. 그냥 멀었다. 심지어 군 생활은 말년부터 시작이라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내가 그랬다.


이러다 보니 육상에는 소위 말하는 고인물이 모이게 된다. 애초에 항해 근무를 하고 배치를 받으니 낮은 계급은 아예 없고, 상병장이 정말 드글드글하다. 덕분에 후임 한번 받으려면 긴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군함이야 인원도 많고 수시로 사람이 빠지니 금방 맞후임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육상은 고작해야 한 사무실에 수병 2~3명 정도가 앉아 있는 곳이 많다. 더구나 선임과 기수 차이가 얼마 안 난다면 건투를 빈다. 그 사람이 제대할때까지 후임은 전설의 포켓몬과 같은 존재가 된다.



해군 작전사령부


배에서 내리는 날,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전날 함장 앞에서 경례도 하고, 정이 든 부대원들과 소소한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섭섭하기도 하지만 기쁜 마음이 더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짐을 다 짊어지고 배치받은 육상 부대로 걸음을 옮겼다. 알아서 찾아가야 했는데 나름 고생을 했다. 그나저나 부대만 옮기면 왜 이리 속이 안 좋아지는지. 배를 처음 탔을때도 이러더니.


약 6개월의 함정근무를 마치고 부산에 있는 해군 작전사령부에 배치받았다. 육상 부대지만 해군의 가장 화려한 군함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 군함만이 아니라 미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찾아온다. 한번은 미군 항공모함이 입항해 구경한 적도 있다. 실제로 승선해 갑판이나 격납고를 둘러보았다. 왜 여러 나라에서 항공모함을 갖고 싶어 하는지, 왜 미국이 북한을 견제할 때 항공모함이 한국에 놀러 오는지 알 것 같다.







배에서는 옹기종기 몸을 구겨 넣고 함게 생활했는데 이곳은 동기 생활관을 쓴다. 다양한 부서에 있는 동기들과 함께 생활하니 즐겁기도 하고 마음도 정말 편하다. 몸도 상대적으로 군함에 비해 편하다. 문제는 결국 시간이다. 지금 생각하면 1년 반이 별게 아니지만, 그때는 어찌나 긴지 모르겠다. 국방부의 시계는 거꾸로 돌려놔도 간다지만 절대 빨리 가는 시계는 아닌듯싶다.


부서는 보좌관실에 배치받았다. 해군 작전사령관을 중심으로 해군의 높으신 분들을 모시는 곳이다.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못할 분들도 여기서는 지나가는 아저씨가 되는 마법이 벌어진다. 덕분에 독특한 경험도 많이 했다. 실상은 행정병이긴 하지만 이것저것 뭔가 해보는 행정병이랄까?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과 의전이라는 문화가 합쳐지니 나름 마음고생을 했다. 참고로 의전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의 준말이다.


동기 중에서는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나중에 퇴근하는 축에 속했다. 주말에도 가끔 나와 일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식사 당번이나 당직 등에서는 열외가 되었으니 그건 그것대로 편했다. 선임도 다 잘 만나서 무탈하게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선임은 아무리 좋아도 선임이었지만.



제대하는 순간에는 의외로 덤덤해진다


국방부의 시계는 가끔 멈추긴 해도 거꾸로 돌아가진 않는다. 결국 언젠가는 제대하는 순간이 온다. 이 순간을 맞이하는 자세는 저마다 제각각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불안해한다. 군대는 의무였을지언정 또 하나의 울타리였으니까. 더구나 말년 병장으로 지내다 보면 나가기 싫어질 때도 있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 나가서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내려니 우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제대 연기 신청을 하거나 하사에 지원하지 않았다면 이제 나갈 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꽤 덤덤했다. 차라리 훈련소가 끝난 시점이 훨씬 짜릿했다. 의례적인 제대식과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나면 이제 나가도 좋다. 그날 자정까지는 군인의 신분이니 사고 치지 말라는 말과, 웰컴 투 예비군이라는 공지사항과 함께. 지겹도록 봤던 부대 정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저 문을 벗어나면 더 이상 군인으로서 살 일은 없다.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있는데 한 동기가 빠른 탈출을 시도한다. 쟤는 언제 저기까지 갔지? 나도 발걸음을 옮긴다. 동기들과 돼지국밥집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아까 그 동기도 잡혀서 결국 같이 앉았다. 이렇게 붙어 있는것도 마지막이겠지.


돌아가라면 결코 절대 다시는 안 가겠지만, 그래도 기왕 갈 군대를 해군으로 간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다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이지만. 그러면 해군을 추천하냐고? 그건 좀 애매하다. 여러 경험을 한 만큼 고생도 많이 했으니까. 안 가는 게 제일 좋다고 보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면 적어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자. 혹시 입대를 앞두고 있다면 잘 다녀오시길. 잘 못 다녀오겠다면 그냥 다녀오시길. 어쨌든 가야하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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