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해군 함정 생활 후기

정보 & 썰/해군

by 법칙의 머피 2020. 3. 28. 11:16

본문



해군 함정에서 생활한 후기


앞선 글에서 해군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함정 생활이라고 한 적이 있다. 헌병이나 운전병 같은 몇몇 직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해군 수병이 군함에서 일정 기간을 복무하게 된다. 짧게는 5~6개월에서 길게는 제대할 때까지. 육해공 중 유일하게 해군만이 군함을 탄다. 하지만 알려진 정보도 많지 않고 막연한 두려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함정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육상으로 발령받을 수 있는지 등.


신식 군함이 많이 진수되고 시설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함정 생활은 기본적으로 힘들다. 적응할 수는 있지만, 사람은 역시 육지에서 살아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부두에 정박해있고, 고속정같이 작은 배의 경우 육상 생활관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하지만 흔들리는 배 안에서 생활해야 하기에 만만치는 않다. 썰을 풀기 전에 배경지식부터 알고 가자.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함대와 군함,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해군의 정점은 해군본부다. 원피스에 나오는 그 해군본부가 맞다. 의외로(?) 바다와 접하지 않은 개룡대에 있다. 이곳에는 해군에서 가장 높은 해군 참모총장이 있다. 참고로 원피스에서는 해군 대장이 세 명이지만 한국 해군에서는 한 명뿐이다. 계급은 대장, 일반적으로 말하는 4 스타다. (5 스타는 없다)


그 밑에서 해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사람이 해군 작전사령관이다. 계급은 중장, 3 스타이다.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하고 삼호 주얼리 호의 선원을 구출했던 '아덴만의 여명' 작전 때도 작전사령관이 지시를 내렸다. 작전사령관은 해군작전사령부에 있으며 현재 부산에 있다. 큰 군함은 대개 부산이나 진해에 정박하고, 미국에서 항공모함이라도 놀러 오는 날에는 주로 부산에 정박한다. 수심이 깊어서란다. 서해에 주로 작은 고속정이 많은 이유다.





작전사령관 밑에는 각 함대 사령관이 있다. 계급은 소장, 2 스타다. 미국은 전 세계를 무대로 삼고 있어  2함대부터 7함대까지 있지만 (7함대는 태평양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 해군은 1, 2, 3함대, 그리고 잠수함사령부가 있다. 1함대는 동해, 2함대는 서해, 3함대는 남해를 방어하고 있다. 여기에 독립적인 여러 부대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훈련소에 가면 원하는 함대와 함정에 지원할 수 있다. 정확히는 1, 2, 3함대, 진해기지사령부, 작전사령부 중에 가고 싶은 함대를 고를 수 있고, 군함을 1급 함부터 4급 함까지 지원할 수 있다. 군함의 급수는 배의 크기와 함장(또는 정장)의 계급을 기준으로 나누게 된다.


1급 함은 구축함, 상륙함 등이 해당하며 대령이 함장이다. 2급 함은 호위함, 초계함 등이 있으며 중령이 함장이다. 3급 함은 유도탄 고속함 등이 있으며 소령이 함장이다. 4급 함은 대표적으로 고속정이 있으며 대위가 정장을 맡고 있다. 큰 배는 '함'이라고 부르고 작은 배는 '정'이라고 부른다. 이보다 더 작은 배는 아예 부사관이 지휘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군함에 관해 얘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대충 위에서 말한 내용만 알아도 생활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어차피 다 교육으로 배우기도 하고 또 선임들이 귀에 굳은살이 배기도록 말해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알고 싶은 건 결국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게 좋을까, 정도가 아닐까?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아무리 편한 함대, 편한 군함에 가더라도 (그런 곳이 있다면)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편한 육상부대에 배치받았지만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악명이 높은 2함대 고속정으로 돌아간 수병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어차피 미리 알 수도 없고 선택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 와중에 조금 더 편한 곳으로 가려는 마음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 나도 그랬으니. 자, 이제 훈련소에서 마주할 선택의 순간으로 가보자.


훈련소 막바지가 되면 교관들이 조용히 종이를 나눠주고 원하는 함대와 군함을 써내라고 할 것이다. 중요한 선택이지만 추가로 주어지는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너무하다 싶지만, 정신 차리고 선택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함대의 경우 진해기지사령부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지우자. 그냥 안된다고 보면 된다. 괜히 1지망으로 썼다가 전혀 원하지 않던 곳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럼 선택지는 1~3함대와 작전사령부로 좁혀진다. 만약 내가 거대한 군함에 로망이 있다면 작전사령부에 지원해야 한다. '신의 방패'라는 별명이 있는 이지스함이나 구축함 등이 작전사령부 예하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말리아로 파병을 가는 청해부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작전사령부로 지원해야 한다. 이런 큰 배는 대개 신식이라 시설도 좋고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어 꽤 선호되는 편이다. 다만 배가 큰 만큼 선임도 많고 할 일도 많다. 그냥 빌딩 하나를 바다에 띄어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작전사령부를 1지망으로 썼다면 자연스레 군함은 1급 함으로 쓰면 된다.


해군에는 이런 말이 있다. 1함대는 파도와 2함대는 북한과 싸운다고. 1함대는 드넓은 동해를 헤치고 나아가기에 파도가 꽤 심한 편이다. 2함대는 북한 고속정과 수시로 마주치는 지역이다. 영화 <연평해전>의 배경도 2함대가 관활하는 서해다. 6.25 전쟁 이후 북한과의 교전이 있었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3함대는 남해에 있어 북한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배도 작은 배가 많은 편이다. 1급 함이 전혀 없으니 3함대를 지원하면서 1급 함을 쓰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정답은 없다. 다만 본인이 사는 지역이나 함대의 특성, 군함 등을 고려해 지원하는 게 좋다. 2함대는 아무도 안 쓸 것 같지만 1지망으로 써내는 사람도 있었고, 또 누군가는 반드시 가기 마련이다. 주변 동기들과도 많은 얘기를 하고 여러 후기도 참고하면 좋겠다.


내 이야기가 모두에게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함정 생활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만 받으면 된다. 큰 틀에서는 비슷할 것이다.





해군 함정에서는 어떻게 생활 할까?


서울 망원한강공원에 가면 '서울함 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제는 퇴역한 서울함과 고속정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해군에서는 가장 오래된 함정 중 하나라 이보다는 시설이 낫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분명 육지에서 살던 시절보다는 고되고 힘들 것이다. 사방에서 페인트 냄새가 나고, 조명은 어두침침하고, 배가 흔들리는 데다, 공간도 좁기 때문이다.


처음에 군함에 배치받았던 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유난히도 흐린 날이었다. 맞선임이 나와 내 짐을 들어줘 안으로 들어갔다. 교육생 실습 시절, 다른 배를 보면서 이런 데서 어떻게 살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여긴 거기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았다. 알고 보니 해군에서 가장 오래된 배 중 하나였다. 침대는 3층 침대인데 쇠사슬을 묶어 고정한다. 엔진도 고장 나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단다.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가 없어 조금만 파도가 쳐도 배가 심하게 기울어졌다.


그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다. 시끄럽게 들리는 모터 소리도 있었지만, 걱정이 앞섰다. 나, 여기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단체로 체조를 하고 일과를 시작한다. 갑판병으로 배치받은 터라 갑판 청소부터 시작한다. 페인트칠도 하고, 밧줄도 정리해놓고, 당직도 서고 그때그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면 된다. 


배가 출항하면 상황이 또 달라진다. 우선 배를 출입항 시키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다. 각자 정해진 임무와 구역이 있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한 명이라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배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해군에서는 시간 엄수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어찌어찌 배를 출발시키면 이제 멀미가 찾아온다. 난 내가 멀미가 심하다는 걸 해군에서야 깨달았다. 아, 이미 늦은 걸 어떡하겠는가. 화장실에서 먹은 걸 다 게워내면서 해군에 온 것을 엄청나게 후회했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와중에 당직도 서고, 밥도 먹고, 훈련도 받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좀 익숙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또 함정 생활은 위험하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바다에서 생활하는 데다 사방에 철제 구조물, 팽팽한 밧줄, 미끄러운 바닥이 널려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크게 다칠 수 있다. 지나가던 상선과 부딪힐뻔한 적도 있었고, 배가 지나가다가 부두에 있던 소화전을 터뜨린 일도 있었다. 철판이 마치 종이처럼 구겨진다.


가장 위험한 일을 꼽으라면 역시 배에 불이 났던 날이 아닐까 싶다. 한밤중에 당직을 서기 위해 터덜터덜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사방이 정전되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일어난 일이었다. 뒤에서 함장이 뛰어 올라왔고 이어 배에 불이 났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엔진실에 고여있던 기름에 불이 붙었단다. 그래서 불길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불을 끄기 위해 난리도 아니었다. 밤바다에서 엔진실이 폭발이라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힘들고 위험하기만 하다면 함정 생활을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항해 중에 마주치는 별똥별과, 붉게 물든 석양과, 조용한 가운데 들리는 파도 소리는 정말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밧줄을 묶어두는 비트 위에 앉아 선임 뒷담화를 하며 마시던 음료수, 밤바다를 환하게 비추는 야광 해파리는 또 어떤가? 무엇보다 언제 내가 다시 배에서 생활해가며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함정 생활은 단언컨대 해군의 꽃이다. 비록 가시가 잔뜩 박혀있는 장미일지언정 한 번쯤 그 자체에 감탄하게 될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지금은 그저 추억할 수밖에. 난 5개월간 배를 타고 육상 부대로 발령을 받았다. 남은 군 생활을 할 그곳으로 떠나는 날, 속에 탈이 나버렸다. 그날 밤도 군함에서의 첫날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본격적인 군 생활은 인제야 시작이라는 것을. 아직도 1년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 대체 언제 끝나는걸까?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