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살아남기 - 인도에는 인도(人道)가 없다.
한 나라를 여행할 때면 그곳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공간이 있다. 마천루가 가득한 도심일 수도 있고, 사람 냄새나는 야시장이나, 정갈한 정원일 수도 있다. 인도에서 한 달 동안 살아남은(?) 결과 내린 결론은 이거다. 인도의 정수는 도로에 있다고. 이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이다.
현지 주재원으로 계셨던 아버지 덕에 총 두 번에 걸쳐 인도를 방문했다. 첫 번째는 2주, 두 번째는 한 달이 조금 넘게 인도에서 지냈다. 나름 영어학원도 다니고 북부를 중심으로 인도 여행도 짧게나마 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을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아 총 다섯 편의 글을 기획했다. 인도의 도로, 일상, 여행, 사람, 매력이라는 다섯 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작 한 달 정도 살아본 것으로 이 거대하고 신비한 나라를 전부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인도 사람조차도 인도를 다 모르지 않을까? 그저 잠시 스쳐 간 여행자의 소소한 이야기 정도로 읽어주시길.
인도 도로에는 세 가지가 없다.
인도에서 다니다 보면 깨닫게 된다. 한국과 많이 다른 곳이라는걸. 그 특유의 향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지는 길의 모습에서 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제목에도 쓰긴 했지만, 인도에는 사람이 다닐만한 인도가 잘 없다.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도심 지역에서나 볼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형태는 아니다. 대개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이 온갖 존재들이 뒤엉킨다. 한국의 도로를 떠올린다면 문화충격으로도 다가올 수 있다.
여기에는 교통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한몫한다. 우선 수도인 델리가 아닌 다음에는 신호등이 잘 없다. 그나마 도시에는 교통경찰이라도 서서 차량의 흐름을 제어하지만, 시골에는 그런 것도 없다. 사람도, 자동차도, 릭샤(인도의 삼륜차)도 많아서 한 뼘이라도 공간이 생기면 끼어들기 바쁘다. 거기에 소 몇 마리가 되새김질하며 도로에 누워있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경적을 아무리 울려도 시크하게 무시해준다.
이쯤 되면 예상했겠지만, 인도에는 무단횡단도 없다. 참고로 예전에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에도 무단횡단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무단횡단이 단순히 눈치 보고 살짝 길을 건너는 정도가 아니다. 8차선 왕복 도로에서도, 심지어 고속도로에서도 무단횡단을 한다. 아니, 무단횡단이 없으니 그냥 길을 건너는 건데, 이쯤 되면 헛웃음이 나온다.
안 그래도 횡단보도가 귀한 인도에서 무단횡단은 필수코스다. 처음에는 주저하다가도, 나중에는 현지인을 리드하며 길을 건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 잠시 지내던 아파트에서 상가를 가려면 8차선 도로를 건너야 했는데 아무리 가도 육교나 횡단보도가 없었다. 결국 차를 타고 가거나 무단횡단을 할 수밖에 없다. 인도의 도로에서는 먼저 들이미는 사람이 먼저다.
길에서 살아가는 존재들.
수도인 델리에는 수십만 명의 노숙자가 길을 배회한다고 한다. 이들은 다리 밑이나 고가도로 아래에 천막을 치고 살아간다. 나름대로 빨래도 널고 밥도 해 먹는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게 시골에서 품을 파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단다. 인건비가 워낙 저렴해서다. 종교적인 영향 탓에 기부에 후한 인도인이니 아마 더 그럴 것이다. 도심의 상시 정체 구간에서는 꽃이나 간단한 주전부리를 파는 사람도 많다.
인도사람이 한국에 오면 길거리에 동물이 왜 이리 없냐며 놀란다는데, 그럴 만도 하다. 인도의 길 위에는 온갖 생명체로 가득하다. 개도 돌아다니고, 소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배추를 받아먹는다. 낙타나 말, 원숭이도 볼 수 있다. 물론 자연보다는 인간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닭둘기 같은 모습이지만 그래도 신선한 건 변함이 없다.
특히 소를 숭배하는 문화가 있어 주인 없는 소도 음식을 얻어먹고 잘 살아간다. 그런데 소가 도로에 너무 많이 돌아다니니 교통정체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수도 델리에 있는 소를 실어다가 먼 지역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의외로 델리에 처음 도착하면 소가 잘 안 보인다.
릭샤의 날카로운 추억
인도에는 릭샤라는 대중교통수단이 있다. 동남아의 툭툭이 같은 녀석이다. 바로 옆 나라인 스리랑카에서는 툭툭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인도만의 용어인가보다. 옆이 시원하게 뚫린 이 삼륜 오토바이를 타다 보면 정말 인도에 온 게 실감 난다.
릭샤가 모여 있는 곳에 가면 모든 릭샤 기사가 나에게 달려든다. 어디 가냐고 물으며 아예 릭샤를 끌고 오는 사람도 있다. 릭샤에는 미터기가 없다. 아니, 있지만 켜지 않는다. 우리 같은 외국인을 위해서는 더더욱 켜지 않는다. 그래서 요금은 흥정으로 정해진다. 어디까지 가는데 얼마, 이런 식으로. 현지인이 아닌 이상 어쨌든 가격을 모를 수밖에 없으니 눈치 게임을 하게 된다.
몇 번 다니다 보면 요금이 대충 머릿속에 들어온다. 그때부터 흥정이 시작된다. 현지인보다는 많이 내겠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경우도 많다. 몇 번의 말싸움 끝에 극적으로 타결을 이룬다. 나름 뿌듯하게 타고 내리려니, 갑자기 원래의 가격을 부른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다시 협상을 시작하던지, 아니면 조용히 돈을 내고 내리던지. 이런 곳은 정말 인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냥 영어 공부한 셈 치자.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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