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정보와 팁 정리
필자는 가족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다. 그래서 혼자 훌쩍 떠나는 것보다 정보도 많이 찾아보고, 준비도 더 많이 했다. 물론 그랬어도 현지에서는 헤매기 일쑤였고, 특유의 길치 본능으로 나만의 길을 개척하기도 했다. A부터 Z까지 모든 상황을 대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떠나기 전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와 팁을 한번 정리해봤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내용은 되도록 간단하게 다루고, 필요한 정보 위주로 쓰려고 한다.
1. 순례자의 배낭에는 뭐가 들었나?
옷과 지팡이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짐은 배낭에 들어간다. 배낭에는 필요한 것을 넣되, 무겁지 않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그냥 가방을 들 수 있는 것과 그 가방을 메고 몇 시간을 걷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배낭이 무거울수록 미련도 많다는 말이 있다. 순례길을 걷다가 아까운 물건을 다 내버리는 일이 없도록 미리 적절한 무게로 맞춰두자.
사실 사람마다 필요한 물건이 다르니 일괄적으로 목록을 작성하기는 어렵다. 모두에게 무릎보호대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DSLR 카메라가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다만 이 사람은 이런 물건을 챙겼구나 하고 참고만 하면 될 것 같다.
기본적으로 배낭은 필자의 체형에 맞는 넉넉한 사이즈로 골랐다. 특히 허리띠와 가슴띠가 있는 것이 좋다. 배낭을 몸에 밀착시켜야 어깨가 아프지 않다. 필자가 고른 배낭은 밑에 침낭을 달 수 있게 끈이 있었고, 우천 시를 대비해 방수커버가 있었다. 신발만큼이나 투자한 만큼 값을 하는 게 배낭이다.
신발은 등산화와 샌들을 챙겨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자갈을 밟을 때 발이 꽤 아프다. 발목도 자주 시큰거린다. 발바닥과 발목을 보호해 줄 신발을 신고 가는 게 좋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가장 편한 신발을 신는 것이다. 어떤 신발을 신든 떠나기 전에 미리 길을 들여놔야 한다.
스틱을 미리 챙겨가지 못해 현지 알베르게에서 한 쌍을 구했다. 특히 내리막을 내려갈 때 무릎을 보호해 줄 수 있고, 넘어지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손을 다치지 않게 장갑도 챙겨가면 좋다.
모자는 선택이지만 고글은 필수다. 나중에는 눈이 부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파온다. 가지고 간 고글이 부러져서 부르고스(Burgos)라는 도시에서 하나를 구입했는데 요긴하게 썼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해 우비도 하나 챙겨가면 좋다. 배낭도 덮을 수 있어 우산보다는 나을 것이다.
옷의 경우 정말 말하기 어렵다. 사람마다 필요한 옷이 다르고,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지니까. 다만 너무 무겁지 않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또, 기본적으로 옷은 매일 빨아 입는다는 생각으로 다녀야 한다.
그렇다면 배낭 속에는 뭘 넣는 게 좋을까? 이거야말로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너무 무겁지 않도록 가져가라는 다소 원론적인 얘기를 할 수밖에. 중간중간 나오는 도시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지만 사실 식재료 외에는 추가로 더 사지는 않았다. 다만 침낭과 일기장 정도는 꼭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다. 알베르게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불을 제공하지 않고, 제공하는 이불도 조잡하다. 침낭이 곧 나의 이불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침낭을 침대에 까는 것이다. 아, 그리고 귀마개는 꼭 챙기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잠버릇은 제각각이니까.
2. 시간과 거리, 그리고 비용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가 얼마나 걷느냐의 문제지, 정답은 없다. 100km 떨어진 사리아에서 출발하면 4일 만에 완주 인증서를 받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찾는 일명 '프랑스 길'을 걸었을 때를 가정해서 루트를 짜보자. 필자가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프랑스 길'은 순례자 중 절반 이상이 찾는 순례길이다. 프랑스의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루트이고, 약 780km 정도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직선거리가 약 325km이니 서울에서 부산을 걸어서 왕복하고 대전까지 내려가는 거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는 아득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하루에 걷는 거리는 20~30km정도다. 필자는 33일 만에 산티아고 광장에 도착했으니 하루 평균 23.6km를 걸은 셈이다. (물론 마을 안에서 돌아다닌 거리는 제외했다) 사람의 걷는 속도가 일반적으로 4km/h이니 계속 걷기만 하면 6시간이 걸리지만, 오르막길이나 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하루에 대략 7~8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 정도를 평균으로 잡고 그날의 일정에 따라 편차가 생긴다고 보면 된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 배낭을 메고 하루 7~8시간 정도를 걷고 쉬면서 움직일 정도의 체력이 되어야 한다. 물론 한 알베르게에서 다음 알베르게로 짐을 보내는 서비스가 있어 이용하면 훨씬 수월하지만, 기본적으로 노약자를 위한 거라고 하니, 피치 못할 경우에만 선택하자.
보통 아침 6~7시에 출발했고 이렇게 하면 점심쯤 도착한다. 어차피 알베르게가 여는 시간이 일반적으로 점심 이후라 성수기가 아니라면 서두를 필요는 없다. 너무 늑장을 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카페에 앉아 커피도 한잔하면서 여유롭게 걸어보자. 레이스를 하러 온 것은 아니니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비용을 따질 때는 이런 말이 있다. '1km에 1유로' 하루에 20km를 걷는다면 20유로 정도가 나온다는 말인데 대충 들어맞는다. 본인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돈을 많이 쓸 곳도 많지 않다. 필자는 780km를 걸었으니 약 100만 원을 쓴 셈인데, 대략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론 비행깃값, 장비값이나 순례길 앞뒤로 하는 여행은 제외한 비용이다. 이렇게 저렴하다 보니 이를 이용(?)해서 싸게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같은 알베르게에서는 하루 이상 머물 수가 없어 조금씩만 이동하고 다시 자리를 잡는 것이다. 뭐, 개인적으로는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개인의 자유니까.
3. 소소한 팁과 주의점
이제 팁과 주의점을 생각나는 대로 한번 쭉 나열해보려고 한다. 알아두면 소소하게 쓰일 일이 있지 않을까 싶다.
- 대성당이나 문화재의 경우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시간대가 있다. 지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부르고스 대성당의 경우 5시 이후에 무료입장이었다.
- 주방에 의외로 많이 없는 게 소금이다. 요리할 생각이라면 소금을 조금 챙겨가자.
- 1편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발가락 양말 위에 등산 양말을 신고 걸으면 물집이 잡히지 않는다. 발가락 사이의 마찰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바셀린보다도 훨씬 효과가 좋다.
- 오 세브레이로(O'Cebreiro)를 넘어 언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파이를 내미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 파이를 고맙다며 받아먹으면 갑자기 돈을 요구한다고 한다. 필자도 만났는데 가볍게 무시해주면 된다. 나름 순례길에서는 유명인사(?)다.
- 스페인의 와인과 맥주는 정말 저렴하다. 4~5유로면 괜찮은 와인 하나를 살 수 있다. 물론 마트에서 샀을 때 얘기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와인을 하나씩 맛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너무 취했다간 알베르게에서 쫓겨날 수도 있고, 다음날에 지장이 있으니 적당히 먹자.
-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http://caminocorea.org/) 사이트에 들어가면 루트와 마을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나와 있다. 순례자 여권도 신청할 수 있으니 이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거리를 계산할 때 유용했다.
- 스페인어로 간단한 인사말이나 숫자 정도는 익혀가는 게 좋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 길가에 열려있는 농작물(특히 체리)은 건드리지 말자. 저렴하게 사 먹을 수 있다. 아, 스페인산 체리 정말 맛있다. 체리랑 와인만 먹고와도 이득이다.
- 배낭은 어깨가 아니라 허리와 등으로 매는 것이다. 허리끈으로 몸에 단단히 고정하고 어깨는 거들 뿐.
- 혹시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댓글을 적극 이용해보자.
끝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지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정말 생생하게 남아있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기에 순례를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 길은 극단적인 고행의 길도, 그냥 경치 보러 가는 관광지도 아니다. 종교적인 의미는 줄었지만, 여전히 영적인 길이고, 무엇보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랬다.
떠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짐을 꾸려 순례자가 되고 싶다. 미디어를 통해 미화된 감은 있지만, 이 길은 정말 멋있는 곳이다. 아니, 직접 가서 보면 역시 실물이 낫다는 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끝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좋았던 마을 하나만 소개하고 마치려한다. 깔사디야 데 로스 에르마니요스(Calzadilla de los Hermanillos)라는 곳이다. 대단한 건 없다. 그냥 시골 마을이다. 큰 대성당이 있거나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다. 이 마을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한쪽에 들판으로 나갈 수 있는 샛길이 있었다. 그 들판과 하늘이라니. 한동안 앉아 멍하니 구경했다. 그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풍경이 왜 이리도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다시 간다고 해도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기억에 남을 풍경 하나만 새기고 와도, 그 여행은 충분히 가치 있을 것이다. 이제 떠나보자.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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