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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사나이> - 대중은 가짜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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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10. 2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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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사나이>

- 대중은 가짜를 원한다


2020년 가장 뜨거웠던 컨텐츠를 꼽으라면 역시나 <가짜사나이>다. 그 파급력으로나 이후 이어진 논란으로나 역대급의 반응을 끌어냈다. <가짜사나이>를 둘러싼 여러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간 지금, 차분하게 이 컨텐츠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되었다.


<가짜사나이>가 왜 대중의 큰 관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는지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컨셉과 주작이 넘쳐나는 유튜브 환경 속에서 대놓고 '가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그 어느 컨텐츠보다 '진짜' 같았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수준이 아닌 그냥 리얼 그 자체로 세상에 나와버린 <가짜사나이>는 그렇게 대박이 났다.


그렇게 시즌1이 호평 끝에 마무리되고, 뒤이어 <가짜사나이> 시즌 2가 발표되었을 때 나 역시도 기대가 컸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시즌 2는 각종 논란의 중심이 되며 종영하게 되었다. 결국 '끝까지 가봐야 이 모든 게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게 되었다. 좋다, 프로그램은 어떤 형태로든 끝이 났다. 하지만 <가짜사나이>는 대중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던 단 하나의 사실을 끌어냈다.


대중은 가짜를 원한다.



<가짜사나이>는 진짜여서 흥했고, 또 진짜여서 망했다. 그 안에서 보여준 고통스러운 훈련 장면, 고압적인 교관의 태도, 이어지는 부상과 퇴교 장면은 분명 진짜였다. 그렇기에 대중의 반감을 샀다. 정말 진심으로 훈련에 임하겠다는 교관과 교육생의 태도가 오히려 가짜를 은근히 갈구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잘못했다, 잘했다 식의 편 가르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대중의 생리가 그렇다. 누구보다도 진실된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그 진짜가 눈앞에 닥쳤을 때, 거기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그 심리가 말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가짜사나이>마저도 진짜가 아니다. 그 자체로 편집된 영상인 데다가 애초에 디스플레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장면이 아닌가. 모든 디스플레이는 RGB, 즉 빛의 3원색을 통해 눈을 속인다. 지금 이 창이 하얗게 보이는 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픽셀이 조합되어 나온 결과다. 소리마저도 당시의 파형을 그대로 복제한 결과물일 뿐이다.


2004년, 고(故) 김선일 씨가 이슬람 무장단체에 잡혀 참수를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은 그 장면을 찍어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고 이는 전 세계로 퍼졌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참수 장면을 자발적으로 보았다. 만약 자기 눈앞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참수를 당했다면 그렇게 두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있었을까?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의 첫 에피소드 '공주와 돼지'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진행된다. 한 테러리스트가 영국의 공주를 납치한다. 그리고 조건을 내건다. 영국의 총리가 돼지와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영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내보내지 않으면 공주를 죽이겠다는 것이다. 결말 부분에 가서 총리는 어쩔 수 없이 방송을 찍게 된다. 그리고 대중은 이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본다. 역겨움과 스릴을 동시에 느끼면서. 그 장면에서 고(故) 김선일 씨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대중은 가짜를 원한다. 그리고 가짜는 이제 디스플레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무한히 복제된다. 진짜를 보고 있지만, 저 일은 나와 상관없다는 안온감을 선사하면서.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이 각광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영화나 게임에 나오는 장면을 실제로 겪어내고 싶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진실만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코로나 사태를 둘러싼 각종 음모론, <가짜사나이>를 둘러싼 논란, 이 모든 걸 '컨텐츠'로 소비하는 대중을 보라. 진실이 무엇인지가 흐려진 세상 속에서 대중은 차라리 가짜를 원하게 된다. 그건 진실로 가짜이니까. 하지만 가짜인지 진짜인지 애매한 진실은 외면을 받는다. 때로는 반감을 사고 아예 공격을 받기도 한다. <가짜사나이>는 그저 이 모든 과정을 빠르게 거친 것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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