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항공편으로 예매해도 싸지 않은 이유
보통 해외여행 계획이 세워지면 먼저 항공편부터 예매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싸지는 데다 원하는 시간대의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인터넷으로 찾아다니다 보면 스카이스캐너나 익스피디아 같은 항공편 가격비교사이트에 다다르게 된다. 원하는 날짜와 인아웃을 설정하고 검색을 누르면 목록이 쭉 나온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같은 국적기부터 난생처음 들어보는 항공사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보통은 가장 저렴한 항공편부터 쳐다본다. 낯선 항공사에 새벽 3시에 출발하고 경유를 두 번이나 한다. 그렇게 첫 번째 후보를 거르고 밑으로 스크롤을 내리면서 최적의 항공편을 찾아 헤맨다.
돈이 쪼들리던 교환학생 시절, 난 보통 저가 항공사를 선택했다. 비록 기내식도 안 나오고 공항도 조금 떨어져 있지만 가격이 너무 매력적이어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런던을 왕복하는데 단돈 오만원이다. 맙소사. 그런데 몇 번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고 나니 알게 되었다. 저가 항공편으로 예매를 해도 절대 싸지 않다는 걸. 오히려 가격 외적인 부분까지 고려하면 더 밑지는 장사였다. 대체 왜 그럴까? 그 이유를 한번 살펴보자.
1. 이것저것 붙는 옵션들
스카이스캐너에서 저가 항공편을 검색해 들어가면 당연히 백원이라도 싸게 표를 예매하고 싶어진다. 경유지, 비행시간, 인아웃 도시 등 고려할 사항이 많지만 일단 가격만 보고 들어가 보자. 그러면 익숙한 스카이스캐너가 아닌 웬 낯선 외국 사이트가 나를 반긴다. 구글 번역기를 돌린 것인지 말투도 어색하다. 불안하지만 적어도 돈은 떼어먹지 않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단계를 밟아나간다.
자동차를 살 때도 기본모델이 있고 거기에 옵션이 하나씩 붙는다. 아반떼에 풀옵션을 붙이면 소나타 가격이, 소나타에 풀옵션을 붙이면 그랜저 가격이 나온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아반떼를 살 바에는 포르쉐를 사는게 차라리 낫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저가 항공편을 예매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능도 있어야지, 저런 옵션도 있어야지 하면서 선택을 하다 보면 오히려 국적기를 타는 게 나을 정도의 가격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기내식 유무, 좌석 위치 선택, 수화물 추적 등이다. 이 옵션을 추가하지 않으면 수속이 늦어질 수 있고, 수화물이 지구 반대편으로 가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며, 환불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협박(?)을 다 뚫고 나서야 원래 가격으로 예매가 가능하다.
2. 툭하면 매기는 각종 페널티
여기까지 감수했다면 당장은 더 싸게 항공편을 예매할 수 있다. 하지만 저가 항공편을 예매했다면 또 하나의 관문이 남아있다. 바로 페널티다. 여기서 말하는 페널티란 내가 특별히 잘못하지 않아도 매겨질 수 있는 추가 금액을 말한다. 저가 항공편이 싸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도쿄로 가는 항공편의 일정을 변경했다가 푯값의 절반을 더 낸 적도 있다. 그것도 인도 출신의 콜센터 직원과 한동안 씨름을 하고 나서야 얻어낸 결과였다. 유럽에서 악명이 높은 라이언에어의 경우 표를 출력해가지 않으면 추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일정을 변경하거나 환불을 받으려고 해도 거의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일이 분단되어있던 시절, 베를린 역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문제는 베를린이 동독에 있었다는 점이다. 서독주민이 베를린을 방문하려면 동독의 고속도로를 지나야했다. 그런데 툭하면 어디선가 경찰이 나타나 높은 금액의 벌금을 매겼다. 그리고 그 벌금은 동독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다고 한다. 저가항공사도 마찬가지다.
3. 싼게 비지떡인 이유
저가항공편을 예매해도 왜 결국에는 싸지 않을까? 저비용 항공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나같은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더 싼 항공편을 찾아헤맨다. 그래서 저가항공사들은 우선 말도 안되게 싼 가격으로 여행객을 유혹한다. 그리고 막상 들어오면 각종 옵션을 붙이고, 높은 비용의 페널티를 물리면서 손해를 본 금액을 보충해나간다. 소비자는 한번 예매하려고 한 항공편을 취소하기 번거로워 결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 표를 구입한다.
게다가 저비용 항공사의 원가절감은 항공편 가격을 넘어 서비스와 제품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좌석이 불편하거나, 기내식을 주지 않거나, 기체가 유난히 더 흔들리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저가항공사라고 해서 더 위험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국적기인 아시아나항공이나 대한항공도 세계적인 기준에서보면 그리 안전한 대안은 아니라고 하니까. 앞서 언급한 라이언에어도 추락 사고는 한번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심하게 떨리는 비행기 창문에 얼굴을 대고 있노라면 여러 상념에 빠지게 된다.
이쯤되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격언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든 정해진 나름의 가격이 있고, 그 대가를 어떤 형태로든 받아낸다. 그게 내 시간이든, 정신적 에너지든, 벌금이든 뭐든간에 말이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광고를 지겹게 들어야하는 이유도, 저가항공편으로 예매해도 싸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국명 작가의 <누가 내 돈을 훔쳤을까>라는 책을 보면 이에 대한 대처법이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가성비 좋은 대안을 선택해 기업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 비단 항공편 예매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차라리 돈을 더 주더라도 항공사 홈페이지나 검증된 사이트에서 항공편을 예매하기로 했다. 알고보니 그게 더 저렴한 경우도 많았다. 예약을 변경해도 패널티가 거의 없고, 기내식이나 수화물을 제외하는 꼼수를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걸 깨달은 시점이 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 이후라는 것. 덕분에 내 필리핀행 항공편은 지금 몇 달째 표류 중이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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