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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정말 선진국일까?

정보 & 썰/여행

by 법칙의 머피 2020. 7. 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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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정말 선진국일까?


코로나바이러스가 덮친 올해, 속절없이 무너지는 서방국가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저 나라들이 우리가 알고 있던 선진국이 맞나? 특히 선진국의 전형이라고 여겨지는 유럽에서 코로나가 퍼지고 마스크 거부 운동까지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 이런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부침이 많을지언정 국내에서는 이제 진정세를 보이지 않는가.


유럽에 여행을 다녀오거나 잠시라도 살아보았다면 알 수 있다. 유럽이 처음의 그 환상 내지는 상상과는 다른 곳이라는걸. 이는 일본인들이 겪는다는 '파리 신드롬'과도 비슷하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유럽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래서 부푼 마음을 안고 유럽의 심장인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면 그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길거리에서는 악취가 나고, 소매치기는 수시로 여행객을 노린다. 호텔은 비좁은 데다 음식도 맛이 없다. 유럽이 정말 내가 알던 그 선진국일까? 그렇게 충격을 받고 집에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 목적이 아니라 아예 체류를 목적으로 유럽을 찾았다면 더 치를 떨 수 있다. 선진국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비효율적인 행정 시스템, 불친절한 종업원, 은근한 인종차별 등을 겪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선진국이라는게 정말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선진국은 사실 굉장히 모호한 단어다.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 발달한 나라라는 말인데 경제적인 지표 정도를 제외하면 꽤 주관적이다. 그렇다고 객관적인 경제지표만을 기준으로 삼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그렇게 치면 카타르나 아랍 에미리트 같은 산유국도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국도 경제력으로는 선진국에 들어가고도 남지만, 아직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예외는 있겠지만 선진국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눠진다. 유럽형 선진국과 미국형 선진국. 유럽형 선진국의 대표주자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독일이다. 미국형 선진국에는 미국이나 일본 등이 속한다. 한국은 어떨까? 굳이 말하자면 현재까지는 미국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단순히 군사동맹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향점이 같아서다.


어느 국가나 경제발전과 인권향상, 문화 육성 등을 추구한다. 다만 어느 방향에 주안점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유럽형과 미국형으로 나눌 수 있다. 유럽형 선진국은 진보적인 이념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경제 발전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인권, 분배, 복지, 행복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고율의 세금과 복지 정책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세금을 많이 걷는 대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국민을 살뜰하게 챙기는 식이다.


미국형 선진국은 보수적인 이념이 지배적이다. 복지나 분배도 신경 써야 하지만 경제 발전이나 자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파이를 나누는 문제보다 키우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세금을 줄이고 기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경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잘 생각해보면 한국도 여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압축성장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데다 반공 정서가 워낙 강해 분배보다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많이 편다. 원내 정당 중 가장 진보적인 정의당이 독일의 보수정당보다도 더 보수적이라고 할 정도다.


이런 환경에서는 보통 자신과 동류인 국가에서 지향점을 찾는 법이다. 미국이나 일본을 보라.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군사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효율성, 공리주의, 경쟁, 성장이 주요 담론으로 등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가울 리 없다. 사회 시스템은 비효율적이고 인권 타령이나 하고 있으며, 복지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삶을 제약한다. 유럽에서 한창 난민 이슈가 터져 나왔을 때도 한국인은 대개 이를 비웃었다. 경제나 사회 안정화에 해가 되는 이들을 왜 받아주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유럽이 선진국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을 터였다.





처음에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시작했을 때도 이런 의문을 품었다. 날씨도 우중충하고 살기도 불편한데 왜 유럽이 선진국이라고 불리는걸까?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그걸 알고 싶었기에 독일로 향했던 나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독일 생활에 익숙해지며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국에서 살 때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무슨 경제발전이나 정치체제 같은 거창한 차원이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한 선진국의 모습이 말이다.


처음은 도로에서였다. 자각하지 못할 수 있지만, 한국은 도로 체계가 자동차를 중심으로 짜여있다. 그래서 횡단보도를 건널때 자동차가 보행자보다 우선해서 지나가고, 자전거 도로에 차를 세워두는 일도 흔하다. 신호등도 아슬아슬하게 건널 수 있을 만큼만 설계되어 있다.


반면 독일에서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모션만 취해도 줄줄이 차가 멈춰선다. 이건 유럽에서는 다 마찬가지인데 하다못해 러시아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한국처럼 차를 먼저 보내고 가려고 했는데 조금 놀랐다. 보행자 신호로 바꿀 수 있는 버튼도 신호등마다 달려있어 원할 때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다. 대신 보행자도 자전거에는 길을 터줘야 한다. 인도에도 빨간 자전거도로가 나 있는데 여기에 발을 디뎠다가는 신경질적으로 딸깍거리는 자전거 소리를 들어야 한다.





독일의 식당에 가보면 다시 한번 문화충격을 받는다. 한국의 기준에서 보면 이렇게 불친절할 수 없다. 보통 벨을 누르거나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부르는 식인데 여기에는 그런 게 없다. 종업원을 부르더라도 바로 오지 않고 자기 할일을 다 하고 천천히 온다. 서빙 자체도 빠르지 않다. 조금만 늦어도 언제 나오냐고 수시로 들들 볶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술집에서 알바를 해봤기에 잘 알고 있다.


유럽에서는 사회체제가 사용자나 고객보다는 근로자, 노동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근무시간이 조금만 초과하거나 자기 소관이 아니면 일 처리를 하지 않는다. 식당 종업원도 자신의 페이스에 맞추어 일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친절함의 대명사인 은행직원도 그렇다. 이들을 만나 계좌개설 같은 간단한 업무를 보려고 해도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하고, 자신들이 잘못해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화가 났다. 하지만 굽신거리며 과잉친절을 베푸는 것도 당사자에게는 큰 스트레스일 수 있겠다 싶었다.


이외에도 버스가 100% 저상버스라는 점, 반려견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물론 교육도 잘 되어있어 짖지 않는다),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게끔 커리어가 잘 짜여있는 점, 학생에 대한 각종 지원을 해준다는 점 등 소소하지만 중요한 포인트에서 역시 선진국이구나 싶었다. 한국보다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그와는 다른 좋은 점도 수시로 발견했다.


어느 사회가 가장 나은 사회인가는 이견이 있을 것이다. 생존과 직결된 방역이나 의료에 관한 한 한국은 의심할 여지 없는 세계 정상급의 선진국이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는 미국을 따라갈 국가가 없다. 시민의식으로는 일본이, 사회 시스템으로는 유럽을 지향할만하다. 다만 유럽이나 미국이 선진국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런 여러 사회적인 기준들이 평균 이상으로 높기 때문이다. 독일이 아무리 불편하다고 한들 인도나 모로코에 가본다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한국 역시도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유럽형이나 미국형이 아닌 제3의 길을 갈 수 있는 대안적인 선진국으로 말이다. 그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하니 앞으로의 행보가 더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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