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이후 여행의 의미
올해 1월, 난생처음 들어본 중국의 우한이라는 지역에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제2의 메르스다, 제2의 신종플루다 하면서 말이 나왔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이 전염병은 코로나바이러스, 나아가 코로나 19가 되면서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모두의 일상도 변했지만, 모두의 일탈도 변했다. 바로 여행이다.
당장 여행업계, 항공업계, 호텔업계가 큰 타격을 받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예약취소가 줄을 이루었고 이제 한반도 바깥으로는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되었다.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 여행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해외 여행업에 비하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여행 유튜버, 여행작가도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그렇다면 개인에게는 어떨까?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그리고 나에게 말이다. 이제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여행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번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되기 이전, 그러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여행, 그중에서도 해외여행은 당연히 가야 하는 연례행사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은 어디를 갈까, 하고 표를 알아보거나 연차를 맞추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사실 나도 어머니와 함께 중국 지역을 여행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렇다. 세웠었다. 하지만 하필 그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는 바람에 계획을 취소했고, 필리핀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지금은 그마저도 불발된 상태다. 그리고 작년에 다녀온 도쿄 이후로 약 1년 정도 여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제 해외여행은 아예 내 선택지에서 지워지게 되었다. 여행을 자유롭게 다녀왔던 지난날이 그저 꿈만 같다. 그렇다면 국내로 눈을 돌리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여행은 뭐랄까, 조금 더 일상에 가까운 느낌이 되었다. 이전에는 이국적인 풍경, 색다른 경험이 더 중시되었다면 이제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무언가에서 의미를 찾게 된다. 설령 제주도를 가더라도 육지와 같은 언어, 비슷한 음식, 유사한 환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다른 환경이라는 것은 더이상 경험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 거제 쪽의 이수도라는 섬을 다녀왔다. 일정 금액을 내고 숙박을 하면 점심, 저녁, 다음 날 아침까지 주는 일명 '1박 3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산물을 좋아하는지라 참 즐겁게 다녀왔다. 섬은 사실 별게 없다면 별게 없다. 한두 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은 섬인데다, 통영에서 봤던 연화도, 매물도, 사량도 같은 곳과도 꽤 비슷하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엄청나게 큰 감동을 받았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이제 여행이라는 것이 하나의 일상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거창한 랜드마크나 세계에서 가장 큰 대성당에서 압도당하는 느낌보다는 소소한 그 무언가에서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에게서, 서쪽 하늘로 떨어지는 낙조에서, 초라하게 무너진 시멘트 담벼락에서 말이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다 보니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그런 식으로 여행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참 허무하리만치 랜드마크에 큰 관심이 없다. 오사카를 갔을 때도 오사카성을 보지 않았고, 모스크바의 바실리 성당도 들어가 보지 않았다. 인도에서 타지마할보다 더 감동을 줬던 건 바라나시의 평범한 길거리였고,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보다 나를 매료시켰던건 나에게 몸통 박치기를 하던 고양이 한 마리였다. 그러고 보면 비둘기와 더불어 고양이도 참 글로벌한 생명체다.
여행자는 저마다 다른 차원에서 여행의 의미를 찾는다. 누군가는 그곳의 화려함을, 누군가는 그곳의 역사적 중요성을, 누군가는 소소한 매력을 끄집어낸다. 좋다. 핫스팟에서 100장의 같은 사진을 찍든, 고양이를 이리저리 어루만지든, 누군가의 묘 앞에서 가슴이 떨리든 그건 각자의 몫이다.
다만 국내로 무대가 제한되어버린 여행이라는 녀석을 앞에 두고, 여행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어떤 의무적인 연례행사는 아니었는지,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그 무언가였는지, 그렇게까지 특별하게 특별해야 했는지 말이다. 코로나 사태는 분명 비극적인 일이지만 그래도 굳이 굳이 의미를 찾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아직도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그저 사진첩을 뒤적이며 이 사태가 얼른 끝나기를, 그렇게 비행기를 타는 설렘을 다시 느껴보길 원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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