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법
비록 본인은 부정했다지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시작을 알린 책이다. 실존주의는 세상을 허무하고 부조리가 가득한 것으로 상정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 부조리 속에서 각자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는 주체자이다. 이를 조금 어려운 말로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라고 표현한다.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어떠한 본질 이전에 나의 존재 자체라는 실존이 먼저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조금 아리송하다면 <이방인>에 등장하는 주인공 뫼르소의 행적을 따라가 보자. 그는 이방인이자 실존주의자의 전형이니까.
<이방인>의 뫼르소는 사실 현대적인 기준에서 봐도 파격적인 인물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쏴 죽였다고 진술하거나, 삶의 주체성을 위해 사형을 받아들인다. 사실 뫼르소라는 사람만 놓고 보면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회사에 다니고 여자친구도 사귀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다. 죽음이라는 강렬한 사건 앞에서도 뫼르소는 담담하다. 그리고 도리어 죽음에서 삶의 주체성과 긍정성을 끌어낸다. <이방인>의 결말 부분에서 그는 외친다. 삶은 무의미하며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오로지 죽음만이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붙들어준다고.
일견 허무주의적인 시선마저 엿보인다. 어떻게 이런 사람에게서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법을 끌어낼 수 있을까? 흔히 긍정이라고 하면 아무 근심걱정 없이 살아가는 누군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예전에 가던 목욕탕 창문에 '모두 다 잘될 겁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는데 딱 그런 이미지다. 하지만 실제로 긍정이라는 단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라는 뜻이다.
미군의 제임스 스톡데일 중령은 베트남 전쟁 당시 8년간 포로 생활을 한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생환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오히려 낙관적인 사람이 더 빨리 죽었으며, 비관적인 사람이 더 오래 살아남았다고 한다. 예컨대 '크리스마스에는 풀려날 거야'라고 낙관한 사람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운동이라도 한 사람은 생존했다는 것이다. 이는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삶에서 마주하는 부조리와 허무함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삶의 긍정성을 노래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뫼르소의 마지막 외침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는 아랍인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재판장에 선다. 하지만 재판을 시종일관 그를 이방인처럼 배제한 채 진행된다.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는 어머니와의 관계나, 신에 대한 믿음이 주요 의제로 떠오른다. 즉 뫼르소 본인이라는 실존 이전에 타자에 의해 부여된 부조리한 본질이 선행한 것이다. 뫼르소가 주체로서 느끼는 감정이나 실존은 철저히 부정당한다.
결국 그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집행을 기다리는 그의 앞에 사제가 나타난다. 사제는 하느님을 믿고 회개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뫼르소는 그마저도 거부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확실한 진실은 실존하는 주체로서 마주할 죽음이며 이를 다른 존재에게 의탁하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이것만이 허무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방인>의 메시지는 문체에서도 드러난다. <이방인>은 시종일관 뫼르소의 내면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선에서 그려진 외부세계를 서술한다. 그 세계에서는 어머니의 죽음, 아랍인의 죽음, 사형선고 등의 사건이 벌어지지만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담담하기만 하다. 마치 이방인과 같이 세계와 내면을 분리한 채 서사가 전개되는 것이다.
<이방인>의 탁월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계에 대한 긍정성을 끌어내는데 있다. 뫼르소는 결말에 이르러 자신에게 무관심하며 자신 또한 무관심한 세상과의 동질성을 자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열린 마음'과 '행복'을 느낀다. 이는 실존하는 주체로서의 긍정성을 한껏 느낀 한 사람의 솔직한 소회이다.
이 소설이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시작을 알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세와 현대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이방인>에 따르면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인정하느냐의 여부다. 흔히 말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란 인간을 주체자로서 보지 않고 특정한 본질로 규정하는 행위이다. 남녀는 이래야 한다, 무릇 신입사원은 이래야 한다, 한국인은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러한 본질이 실존하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부여된다는 데 있다. 실존주의는 본질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경험하며 사유하는 실존으로서의 자아가 본질 이전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직도 개인을 무언가로 규정하는 현대사회에서 뫼르소의 외침은 더욱 크게 메아리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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