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유통의 미래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한계

정보 & 썰/경영&시사

by 법칙의 머피 2020. 5. 17. 18:43

본문



유통의 미래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한계


유통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소비자와의 최접점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온-오프라인 유통업의 특성상 이는 비단 특정 산업군만이 아닌 시장 자체의 방향성에 관한 물음이 될 것이다. 제아무리 물건을 잘 만들어도 이를 소비자에게 유통시키지 못한다면 악성 재고로 남을 뿐이다. 소비자는 생산지가 아닌 판매지에서 구매를 결정한다.


유통업은 트렌드에 가장 민감해야 한다. 여기에서 트렌드는 소비자의 선호나 떠오르는 아이템일 수도, 심지어는 정치적 이슈나 천재지변일 수도 있다. 최근까지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19 이후 재편된 유통업계의 모습을 보라. 이른바 언택트(Untact; 비대면 구매) 트렌드가 강화되며 온라인 유통업체인 쿠팡이 대형마트의 매출을 뛰어넘었고, 재난지원금 이슈와 맞물려 GS리테일의 시가총액이 이마트를 상회했다. 그리고 아마 코로나 사태가 해결된 직후에도 이러한 경향성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여기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간의 성장은 가능할 것이다. 벌크(Bulk)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코스트코의 경우 미국 내에서의 사재기로 매출 상승을 이루어냈다. 국내 백화점이나 면세점의 명품관 역시 코로나로 인한 보상심리로 인해 명품 소비가 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소비 트렌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며 이들 업체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전망이다.



온라인 유통의 한계


그렇다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사실 몇몇 업체를 제외하면 온라인 유통은 적자운영을 하는 실정이다. 앞서 언급한 쿠팡 역시 소프트뱅크에서 유치한 투자금을 거의 다 소진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사실 온라인은 유통 구조상 마진(Margin)이 많이 남을 수 없다. 보통 대형마트의 경우 20~30%, 백화점의 경우 30~40% 정도의 유통마진을 유지한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통상 10% 내외의 저마진 전략을 구사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도 그렇지만 온라인 유통의 가장 큰 경쟁력은 가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격 비교 사이트가 보편화하며 10원이라도 저렴한 채널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마당에.


문제는 가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제로(0)마진을 넘어 역(逆)마진으로 일관한다면 재무  건전성이 파괴되어 사업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 한마디로 밑지는 장사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쿠팡의 경우 시장지배력 확보를 위해 저마진 혹은 역마진 전략을 유지하고 있지만, 추가적인 투자금이 없다면 이를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 유통가는 가격뿐만이 아니라 배송이나 CS, 데이터 분석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저마진을 유지하는 가운데 여타의 서비스로 차별화를 두는 것이다. 스타트업인 마켓컬리의 새벽 배송이 주목을 받자 쿠팡, SSG닷컴 등 유통업의 강자들도 자체적인 물류 시스템을 구축해 이를 구현했다. 롯데 e커머스나 11번가는 인공지능(AI) 상담봇을 개발했고, 쿠팡은 구매 데이터 분석을 통한 물류 혁신을 끌어냈다.


하지만 온라인 유통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온라인 환경의 특성 자체에서 기인한다.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에 따르면 온라인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10원이라도 저렴하면 구매처를 옮긴다. 조금이라도 결제 시스템이 귀찮거나 사은품, 포인트를 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온라인 소비자는 충성도(Loyalty)가 굉장히 낮다.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다고 하면 해외직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국내업체까지는 어찌어찌 한다고 쳐도 알리바바나 아마존으로 달려가는 소비자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독점이 아니라면 기업 입장에서 충성도를 올릴 방법은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는 것이다. 브랜드 파워는 개별적인 기술이나 가격에 국한되지 않고 소비자에게 그 기업에 대한 종합적인 선호를 심어준다.  나이키를 생각해보자. 나이키는 기술 혁신과 더불어 브랜드화(化)를 가장 선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기업이다. 거리를 다니다가 가끔 보이는 나이키 매장 간판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이키는 애플과 더불어 거의 유일하게 로고에 자사의 브랜드명을 쓰지 않는다. 그 날렵한 로고만 보면 소비자는 자연스레 나이키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온라인 유통의 미래는 이러한 브랜드화에 있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꽤 험난할 것이다. 개별적인 기술이나 가격 경쟁력을 넘어선 브랜드 파워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더구나 온라인 유통 시장은 빠르게 재편되는 특성이 있다. 소비자가 과연 쿠팡이나 SSG닷컴이 충분한 브랜드 파워를 쌓을 때까지 기다려줄 것인가? 그 사이에 알리바바나 아마존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상륙하여 시장을 잠식한다면?



오프라인 유통의 한계


그렇다면 차라리 오프라인 유통을 더 강화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자. 가격이 100원이라도 저렴하면 G마켓에서 티몬으로 옮겨 다니던 소비자가 백화점은 꼭 현대백화점을 찾거나 편의점은 꼭 CU를 이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를 꼭 브랜드화로 연결 지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건 실체가 있는 오프라인 유통 업체가 브랜드화에 더 용이하다는 것이다. 이마트가 일렉트로마트나 노브랜드를 통해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신세계 스타필드가 코엑스에 별마당도서관을 지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 물건'을 산 그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에서 그 물건을 샀다는 식의 스토리를 원하는 것이다.


실제로 오프라인 유통 업체는 특유의 강점인 소비자 경험 제공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를 강남 한복판에 세우거나, 애견 출입이 가능한 거대 아울렛을 짓거나, 아예 온라인과 결합해 이른바 옴니채널(Omni-channel) 전략을 구사한다. 실제로 온라인 기반의 아마존이나 알리바바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오프라인 유통 매장을 속속 오픈시키고 있다. 물건을 가지고 나가면 자동으로 결제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재고 및 매장 관리도 무인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한 고객 데이터를 통해 효율적인 발주 관리와 트렌드 파악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의 경우 장기적으로는 온라인 유통에 그 왕좌를 내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오프라인 매장은 일종의 쇼룸(Showroom)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백화점에서 온갖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옷을 입어보고는 온라인에서 발견한 더 저렴한 옷을 집으로 배송시킨다. 나 역시도 대형서점에 찾아가 책을 구경하고 오는 길에 핸드폰을 꺼내 책을 구매한다. (사실 오늘 그랬다)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결국 고객만 왔다 갔다 하고 매출은 오르지 않는 상황만 반복될 것이다. 더구나 판매사원을 부담스러워하는 젊은 소비자의 경우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진다. SPA 브랜드처럼 간섭하지 않게 사원교육을 하면 된다고? 그러면 더 안심하고 온라인에서 구매 버튼을 누를 것이다.


이 밖에도 갈수록 강화되는 언택트 트렌드, 온라인 특유의 롱테일 전략, 빨라지는 배송 서비스 등 오프라인 매장을 찾을 이유가 점점 사라지는 마당에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온라인으로 전환하자니 저마진과 기술장벽이 부담되고, 오프라인에 남자니 임대료만 쌓여간다면 더더욱 그렇다.



유통의 미래


그렇다고 손만 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통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트렌드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후진술이다. 지금 이런 것이 떠오르고 있으니 여기에 편승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짜야한다 식의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박자, 아니 반 박자라도 빨리 그 트렌드를 읽어 사업을 펼쳐나가는 것이 결국 비전이고 혜안이다. 미래를 읽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다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먼저 개별 기술을 통해 유통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틀릴 공산이 크다. 몇 년 전부터 한창 옴니채널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고 많은 위치 기반, QR 코드 기반 서비스가 등장했지만 그다지 이슈가 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3D 프린터로 인해 유통의 구조가 변할 것이라는 담론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는 분명 유의미한 기술이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는 기술 발전과 소비자의 인식 간의 간극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인프라의 문제일 수도 있다. 아직 5세대 통신망 기술이 보편화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 4G에 비해 큰 메리트가 없고 5G를 당장 이용해야 할 정도로 사물인터넷이 상용화되지도 못했다.


알리바바나 아마존의 무인 유통망 사례를 분석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다만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프로세스를 익히기 전에 큰 트렌드부터 읽어야 한다. 순간적인 노이즈를 캐치하는 것은 몇몇 눈치 빠른 MD도 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트렌드를 분석하는 건 다른 문제다.


우선 가장 확실한 것부터 이야기해보자. 바로 인구학적인 통계다. 노령화와 1인 가구의 성장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교수는 <정해진 미래>에서 이를 분명히 한다. 인구학적인 구조는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하다. 개별 인간의 생사는 알기 어렵지만, 집단으로서의 개인은 거의 정해진 루트를 따라간다. 다만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여전히 유통업계의 몫으로 남는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자신의 저서 <상상하지 말라>에서 말한다. 막연한 상상으로는 트렌드를 읽을 수 없다고. 앞서 언급한 노령화와 1인 가구만 봐도 그렇다. 보통 노령화하면 이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여러 가지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노년층은 대부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바꾸지 않는다. 이들에게 새로운 상품을 소개해봐야 별로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령층의 증가로 인해 건강기능식품, 의료기기 등의 매출은 올랐지만 다른 산업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1인 가구도 마찬가지다. 보통 1인 가구 하면 뭐든지 작게 만들면 되는 것 같다. 작은 모니터, 작은 세탁기 이런 식으로. 하지만 1인 가구는 오히려 큰 모니터로 넷플릭스를 보는걸 선호했고, 빨래도 몰아서 하는 바람에 큰 용량의 세탁기를 찾았다. 더구나 이미 오피스텔이나 원룸에 세탁기가 빌트인(Built-in) 되어 있는 경우도 많아 굳이 세탁기를 사지 않는다. 트렌드를 잘못 읽으면 작은 모니터를 잔뜩 진열해놓고 팔리지 않아 눈물의 할인행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유통업계에서는 정답이 현장에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특히 오프라인 매장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현장에는 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답을 읽어낼 눈이 없다면 아무리 매장 경험이 많아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 개별 소비자의 요구사항이 아닌 전체적인 트렌드를 파악하려면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송길영 부사장은 말한다. 상상하지 말고 관찰하라고. 유통의 미래를 읽고 싶다면 그 관찰의 범위를 개별 매장이나 우리 회사가 아닌 유통 산업군, 더 나아가 전체 산업군으로 넓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것처럼 보이는) 사건을 잇다 보면 조금씩 길이 보이지 않을까?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