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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식 문화가 필요한 조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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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6. 1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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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식 문화가 필요한 조직은 없다


이제 조직에서 군대식 문화를 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군대식 문화의 고향인 군대조차도 이런 악 폐습을 없애자고 하는 판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문화는 은연중에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대기업을 필두로 군대식 문화를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러이러한 문제가 많으니 이제 선진국형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거나 아예 직급을 통일하거나 하는 식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한다. 하지만 조직원은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군대식 문화는 단순한 호칭 이상으로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군대식 문화의 단점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소통의 부재, 수직적인 상명하복, 창의력의 부재, 유연성 부족 등. 이는 마치 흡연의 단점을 읊으면서 금연을 권하는 것과 같다. 군대식 문화는 사실 이른바 '윗분'에게는 더없이 편한 문화다. 그리고 상사들은 조직의 문화를 좌지우지할 권한을 가지고 그 특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너희도 조금만 더 참으면 이 달콤함을 누릴 수 있노라며 군대식 문화를 미화하기도 한다. 진급만 하면 갑질도 하고 아랫사람 수발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대에서 한창 병영 혁신의 바람이 불었을 때 선임에게 들었던 말과도 비슷하다.


부하직원이 변변찮은 도덕이나 치기 어린 반항심으로 여전히 항변한다고? '군대식 문화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라는 말을 해보라. 곱씹어보면 참 오묘하다. 군대식 문화의 단점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놔둬야 할 아름다운 문화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쉐프가 주방을 지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방송에서는 더없이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주방에서만큼은 사뭇 달랐다. 사방을 주시하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되면 큰소리를 치고 그릇을 빼앗았다. 군대 사격장을 생각해보라. 만약 사격 조교가 한명 한명을 존중하다 보면 불의의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만큼은 군대식 문화가 유용하다. 아니, 꼭 필요하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실제로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군대식 문화가 필요한 순간'을 점차로 확장하더니 일상생활에도 적용한다. 그렇게 남의 복장이나 연애관, 인생관에도 간섭하고 자기가 상사니까, 연장자니까, 선배니까 옳다고 말한다. 군대식 문화는 군대 내에서도 충분히 문제였다. 하지만 연병장 담벼락을 넘어 군대식 문화가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시점부터 더 큰 문제가 되었다. 


영화 <위플래쉬>(Whiplash; 2014)를 생각해보자. 이 작품에 등장하는 플렛처 교수는 폭군의 전형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그리고 주인공 앤드류는 그에게 인정받는 드러머가 되기 위해 문자 그대로 피나는 노력을 한다. 결말에서 앤드류가 펼치는 폭발적인 솔로 드럼 신은 서사를 완성하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위플래쉬>가 완성한 서사는 사실 드럼에 관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 관객에게는 그랬다. 앤드류는 온몸으로 군대식 문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플렛처 교수처럼 인격은 좀 무시하더라도 한계를 넘게 해 주는 윗사람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플레처 교수는 학생의 뺨을 때리고, 드럼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지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달성해야 할 목표 내지는 경지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앤드류는 끝끝내 그의 인정을 받아내며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 비슷한 서사로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있다.





하지만 <위플래쉬>는 군대식 문화의 이면도 분명하게 비춘다. 플렛처 교수가 가르치던 학생 한 명이 자살한 것이다. 앤드류조차도 그의 교수법에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삶이 무너져내린다. 영화는 묻는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지만 정말 이 정도까지 미쳐야 할까?


차라리 앤드류처럼 드럼이라도 잘 치게 되면 모르겠다. 군대식 문화는 대부분의 경우 일정 이상의 퍼포먼스를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사소한 일조차도 상사에게 일일이 확인을 받거나, 더 좋은 프로세스에 대한 담론이 전혀 없거나, 부당함이 지속해서 조직에 누적된다면 어떤가? 장기적으로 이 조직이 성과를 내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진다. 군대식 문화는 역할이 아닌 지위에 얽매일 때 나타난다. 각자의 역할에 따라 행동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면 되는데 이 과정이 위아래에 따라 심하게 왜곡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군대식 문화가 필요한 상황'에서조차 분명 대안이 존재한다. 모두가 플렛처 교수처럼 학생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뛰어난 드러머도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 사격장에서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끔 총기를 정비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면 되는 것이지 무작정 병사들을 때리고 욕을 할게 아니다.


결국 군대식 문화는 인격과 더불어 시스템과 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차원에서 군대식 문화는 굉장히 게으르다. 다른 더 좋은 대안을 고민하거나 수용하지 않고 일차원적인 방식만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문화를 한껏 체화한 상사와 지내고 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대안이 무엇인지는 조직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군대식 문화보다는 더 나은 선택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군대식 문화가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나 상황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믿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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