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살아남기 - 인도인 탐구생활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봐도, 장담하건데 인도인만큼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잠시 스쳐 가는 여행자로서도 그랬고, 잠시 생활했던 사람으로서도 정말 많이 느꼈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 반대로 당연하지 않은 것이 이곳에서는 당연해질 때, 난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인도에서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하는 이들은 대개 기후나 음식보다 사람을 그 이유로 꼽는다. 우리 정서와 달라서, 생각이 너무 달라서 등.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다르기에? 그래도 같은 아시아인인데? 내가 만난 이들이 전체 인도인을 대표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인도를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종교의 나라 인도
인도는 흔히 신의 나라, 종교의 나라로 불린다. 현대사회에서도 종교가 삶에 영향을 강하게 미치는 나라 중 하나다. 인도인의 80% 정도는 힌두교를, 15% 정도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그 밖에도 자이나교, 시크교, 기독교 등 여러 형태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비율이 1%라고 해도 무시하지 말자. 13억 인구 중 1%면 천만 명을 훌쩍 넘긴다.
그중 힌두교는 인도를 대표하는 종교다. 힌두교는 단순한 신앙을 넘어 인도인의 생활양식, 사고방식을 형성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스트제도다. 공식적으로 카스트제도는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은연중에 남아있다. 여전히 다른 카스트의 사람들끼리는 접촉을 꺼리고, 아직 보수적인 시골에서는 명예살인도 가끔 일어난다. 인도인은 만나면 서로의 이름과 성을 묻는데, 성을 통해 그 사람의 카스트를 알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카스트가 높다고 해서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건 아니다. 실제로 가장 낮은 계급의 카스트에서 총리가 선출된 적도 있다. 카스트는 세속적인 지위와는 별도로 존재하는 또 다른 차원의 계급이다. 우리로 치면 왕족 집안이니, 양반 집안이니 따지는 격이랄까? 참고로 외국인은 카스트가 없기에 가장 낮은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인도인은 웬만해서 외국인과 신체적으로 접촉하지 않는다.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자.
인도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갠지스강일 것이다. 죽음과 파괴의 신 시바를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주황색 옷을 입고 이곳의 물을 뜨러가기 위해 걸어가는 인도인 무리를 볼 수 있다. 자기 마을에 있는 시바신 동상에 갠지스강 물을 끼얹어 정화해야 한다고 믿어서다. 그 과정에서 갖은 고생을 하는데, 그 자체를 하나의 종교적인 수행으로 생각한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No Problem? All is Well!
인도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No Problem"이다. 어디 가자고 해도, 뭐 좀 고쳐달라고 해도, 뭔가를 물어봐도 들을 수 있는 대답이다.
다만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인지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루는 집에 와이파이를 설치해야 했다. 뭐가 어렵겠는가? 기사도 어김없이 말한다. "No Problem." 하지만 여기가 인도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우선 인도에서는 기사가 세 명이 온다. 한 명은 가방을 들고 다닌다. 한 명은 와이파이를 설치한다. 다른 한 명은? 감시하는 사람이다. 최소한 심심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자기들끼리 와서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5분만 있다가 오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코빼기도 안 보인다. 한 시간쯤 있다가 슬슬 나타난다. 당연히 미안하다는 소리는 없다. 여기서는 이게 당연하다. 화를 내면 지는 것이다. 또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장비를 가지러 한 시간 있다가 온단다. 알았다고 했다. 아, 맞다. 인도에서의 한 시간은 다음날을 의미한다. 그렇게 몇 번을 오가더니 설치가 끝났다.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다. 아예 아무 진전도 없는 경우도 태반이니까. 고장 난 서랍을 고치는 데는 거의 반년이 걸렸다.
일을 빨리 끝내고 싶다면 높은 사람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꼭 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아파트 관리소장하고 친하게 지내야 한다. 덕분에 반년을 끌던 고장 난 서랍이 하루 만에 고쳐졌다. 권위와 지위를 중시여기는 인도인의 습성 탓이다. 그 때문에 공무원이 굉장히 고압적이다. 하다못해 공항 직원도 그렇다. 관청이나 공항에서 일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하는 이유다. 보안 검색을 하다가 자기들끼리 수다를 떠느라 시간을 끌기 일쑤다.
이해가 안 돼도, 불편해도 어쩌겠는가? 이것이 인도인의 모습이고 인도의 모습인 것을. 이방인인 나로서는 그저 'All is well'을 되뇌며 살아갈 수밖에.
인도도 변화한다.
하지만 인도 역시 변하고 있다. 인도인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여성이 결혼하면 이마에 점을 찍고 전통 복장인 사리를 입고 다닌다고 한다. 하지만 델리에만 가도 세련되게 차려입은 여성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예 자유로운 삶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인도를 천년만년 멈춰있을 곳으로만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현(現)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는 인도인이다. 그만큼 IT기술과 기초과학 등이 탄탄하게 다져져 있는 곳이다. 세계 사상과 수학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수많은 젊은 인도인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중국 다음에 급부상할 나라로 인도가 꼽히는 이유다.
라다크에서 만난 인도인 가이드는 내게 영국식 영어를 꼭 배우라고 했다. 인도에서 쓰는 영어가 영국식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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