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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병 체험기 : 천국과 지옥 사이 (feat. 라다크)

정보 & 썰/여행

by 법칙의 머피 2020. 1. 7.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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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병, 약도 없다.


'고산병은 해발 3,000m 지점부터 나타나는 증상이다. 두통과 메스꺼움, 호흡곤란을 야기한다.' 사전에 나와 있는 설명이다. 그전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국내에서 가장 높다는 백록담이 2,000m가 안되니, 사실 고산병은 국내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증상이기도 하다.


인도 북부에는 라다크라는 지역이 있다. 중국과 파키스탄과 맞닿아 있는 곳으로 히말라야의 줄기가 힘차게 뻗어 나온다. 평균 해발고도가 굉장히 높은 곳이다. 실제로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 도로(카르둥라, Khardongla)가 있는데 그 높이가 무려 5,600m를 넘긴다.





 라다크의 중심에는 레(Leh)라는 도시가 있다. 라다크에 가려면 이곳에 있는 공항을 이용하거나 마날리에서부터 차를 타야한다. 나는 그 당시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약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해 짐을 풀고, 주변을 잠시 둘러봤다. 그런데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머리도 점점 아팠다. 아, 고산병이었다. 반면 같이 간 우리 엄마는 쌩쌩하게 걸어 다닌다. 고산병은 체질이라더니 정말이었다. 실제로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는 사람이 비실거리거나,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다음날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송곳으로 꾹꾹 누르는 것 같았다. 속도 안좋고 숨도 차고, 몸도 쳐졌다. 결국 차에서 축 늘어진 채로 이리저리 실려 다녔다. 시간이 좀 지나니 좀 나아지긴 했지만, 머리가 아픈 건 여전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카르둥라에서 잠깐 차에서 내렸다가 감기도 걸려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상징적인 장소에서 사진 한 장을 안 찍을 수 있겠는가?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식어 빠진 콜라만 홀짝였다. 아, 그리고 라다크에서는 먹방을 기대하면 안 된다. 고산 지역이라 음식이 정말 밍밍하고 맛이 없다.






천국과 지옥 사이, 그 어딘가


최근 판빙빙이 고산병 때문에 투병하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티베트 지역으로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가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중국 최고의 스타도 고산병은 피해갈 수 없나 보다.


이렇게 보면 굳이 고산 지역을 왜 가나 싶다. 하지만 라다크에는 분명 고산병과, 맛없는 음식을 뚫고 갈만한 무언가가 있다. 지옥의 고통을 맛보다가도 천국 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질 때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다. 창문에 얼굴을 기대어 눈만 돌리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라다크의 모든 것이 좋았지만 특히 판공초가 더 그랬다. 판공초는 해발 4,500m에 있는 호수다. 바다가 그대로 융기해 만들어진 호수라 물맛도 짜다. 영화 <세 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그 고요한 곳에서 호수를 바라봤다.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와 물소리뿐. 이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하지만 외로움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더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고산병 때문에 욱신거리는 머리를 주무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천국이 있다면 이곳일 것이고, 지옥이 있다고 해도 이곳일 것이다. 어쩌면 천국과 지옥은 다르면서도 같은, 그런 장소가 아닐까. 그냥 내 생각이다. 정말 다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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