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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의 파워 인플레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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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19. 12. 2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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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인플레이션 현상은 왜 나타날까?


파워 인플레는 일본 소년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일본 만화의 전형적인 패턴은 '위기 ▶ 각성 ▶ 극복 ▶ 새로운 위기' 순으로 나타난다. 매순간 새로운 적이나 문제상황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그 순간을 넘기며 더 강해진다. 이를 통해 플롯의 긴장감을 높이고, 각성하는 부분에서 극적인 연출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패턴을 계속 반복할 경우 생긴다. 주인공도, 그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적도 끝없이 강해져야 한다. 계속 강해지기만 하다가 결국 점점 과장된 결말로 치닫는다.



그렇다면 파워 인플레 현상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먼저 반복되는 패턴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인공은 어느날 강한 적을 만나 패배한다. 절치부심하여 수련 끝에 그 적을 쓰러트린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적보다 더 강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패배하고, 다시 수련한다. 겨우 이겼더니 또 다른 적이 나온다. 이쯤되면 더 보지 않아도 대충 다음 전개가 예상된다. 뻔하고 지겨워진다는 말이다. 플롯 자체의 독창성이 없으니 더 큰 자극으로 매순간 스토리를 떼울 수밖에 없다. 산을 날려버리다가 이젠 행성 자체를 부수고, 결국 우주의 존망을 건 전투를 시작하는 식이다.


그 이면에는 출판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요즘 출판 만화계의 위상은 예전같지 않다. 이는 일본 만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은 기를 쓰고 계속 연재하려 한다. <명탐정 코난>이 가장 대표적이다. 코난의 작가인 아오야마 고쇼는 몇번이나 완결을 내려 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현재는 단행본 기준으로 96권이나 나온 상태이다. <드래곤볼>처럼 연재를 연장했다가 더 대박을 터뜨린 사례도 있긴 하다. 하지만 작가의 손마저 떠나버린 작품은 대개 방향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여기서 두번째 문제점이 나온다. 작품이 방향성을 잃고 붕 뜨게 된다. 먹방(?) 만화로 시작했다가 우주로 날아가버린 <토리코>나, 힘겨루기를 하다가 스토리 자체를 날려먹은 <블리치>가 대표적이다. 이제 눈앞에서 많은 것이 부서지고 있는데 왜 그런 것인지, 이야기는 어디로 가는건지 알 수가 없다.


<강철의 연금술사>가 명작이라고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만화에도 물론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고, 주인공의 각성도 등장한다. 다만 주인공의 성장이나 각성은 대개 정신적인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사실 처음과 마지막 부분만 봐도 주인공의 힘 자체는 그닥 차이가 없다.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깨달음을 얻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토가시 요시히로의 <헌터x헌터> 역시 뻔하지 않은 플롯으로 파워 인플레 현상에서 벗어난다. 주인공인 곤은 딱 한번 엄청나게 강해지지만, 그 힘을 위해 자신의 미래마저 희생해야 했다.





아예 파워 인플레 현상을 극한으로 몰아쳐서 도리어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도 있다. <천원돌파 그렌라간>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경쾌하고 빠른 전개와, 극적인 연출이 특징이다. 시간을 끌기 위해 과거 회상 장면을 억지로 넣거나, 수련을 위해 몇년간 두문불출한다는 식의 클리셰가 없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눈앞의 적을 돌파해간다. 지금봐도 군더더기 없는 만화다.


파워 인플레 현상은 일본 만화, 특히 소년 만화에서 피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스토리는 정형화되고, 결국 더 자극적인 요소로 독자층을 끌어모을 수밖에 없으니까. 또 이런 장르의 만화가 주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분명 이를 타개할 방법은 있다. 앞서 언급한 만화가 그랬듯이. 이제 독자들은 새로운 색깔의 작품을 원한다. 영상 컨텐츠가 대세인 시대, 만화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도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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