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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에서 알 수 있는 일본인의 세계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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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19. 12. 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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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다른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미드는 미드만의, 영드는 영드만의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일본 만화도 마찬가지다. 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눈이 크고 둥글둥글한 그림체나, 플롯이나, 클리셰적인 대사가 그렇다. 그런데 일본 만화를 보면 일본 사람들이 세계의 다른 국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이런 각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통해 역으로 일본이 어떤 국가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일본 만화에는 수많은 나라가 나온다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다. (가상의 국가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1. 영국, 그리고 서양


우리에게 있어 서양이란 미국에 가까운 모습이다. 물론 일본도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 만화에서의 서양은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을 중심에 두고 있다. 사실 일본 만화를 조금만 봐도 일본인의 영국 사랑이 유별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헬싱>은 아예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마법선생 네기마>나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도 영국인 캐릭터가 이야기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가상의 국가나 혹은 일본이 배경인 경우가 대부분인 와중에 영국은 판타지가 펼쳐질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영국인 걸까? 유서 깊은 국가라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도 있을텐데. 또 일본인들의 프랑스 사랑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어쩌면 동질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본과 영국은 둘 다 섬나라이고 아직 (상징적이지만) 왕의 통치를 받는 나라이다. 또 한때 세계를 좌지우지했으니 더 그럴 만도 하다. 그러면서 나름의 세련된 이미지도 있으니 일본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그 외의 서양 국가들의 경우 특유의 스테레오타입을 소재 정도로 녹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의 경우 이탈리아 마피아가 주요 소재로 나오는데, 사실 이들은 마피아라는 점 외에는 이탈리아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심지어 주인공도 일본인이다. 사실 이는 서양 국가에 대한 일본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은 제한된 창구를 통해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요소들도 일본 현지화를 시켜버린다. 서양인 캐릭터에 기어이 카타나(일본도)를 들리거나 아니면 굉장히 편견에 충실한 이미지로 재구성한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반박할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미국 영화도 그렇고, 외국인에게 한국을 좋아하라고 거의 강요하는 한국 예능도 그렇지 않은가? 왜 일본 만화에서만 그게 문제가 되는가? 물론 맞는 말이다. 사실 위와 같은 설정 자체가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일본이라는 국가가 갖는 위상과 그 일본인들이 가진 세계에 대한 인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미국 할리우드조차도 편견을 줄이려 노력하는 마당에 말이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이를 재단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 열린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



2. 한국, 그리고 아시아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일본 만화에 한국이 나온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없다. 이건 일본 만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아시아가 지워져 있는 것.






거대한 대륙 국가인 중국조차도 그렇다. 물론 <킹덤>같이 아예 중국 역사를 다루는 작품도 있긴 하지만. 중국인은 대개 치파오나 빵머리를 하고 나와서 무술을 펼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메이 창이나 <은혼>의 카구라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일본 만화에서 자세하게 묘사되는 아시아 국가는 거의 없다. 개그 소재로도 잘 활용되지 않는다. 물론 과거사 문제로 아시아 국가들과 껄끄러운 관계인 점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예 언급도 잘 되는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이는 일본의 탈(脫)아시아 움직임과 연관되어 있다. 심지어 1999년에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일본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일본인은 은연중에 자신을 아시아에 있는 서양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 등 근대화 작업을 통해 빠르게 서구화가 진행되었던 만큼 무리는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면 일본은 정녕 서양이 되고 싶은 걸까?



3. 결국 일본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 서양과 아시아를 생각해보면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일본은 그저 일본이 되고 싶을 뿐이다. 세계를 받아들이되, 일본화가 되어야 한다. 즉, 결국 일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문을 활짝 열었지만, 아직도 일본인의 세계 인식은 제한적이다. 이런 모순된 상황이 공존하는 것도 일본이라서 가능하다. 참 재밌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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