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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은 책을 읽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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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7. 2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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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은 책을 읽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멀리했다. 운동과 더불어 독서는 은근 죄책감을 자극한다. 이제 책을 한번 읽어보기로 한다. 자신 있게 책을 폈건만 몇 분 사이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만다. 혼자 할 수 없다면 같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모임은 어떨까? 독서모임에 등록해서 첫 모임에 나간다.


아마 독서 모임을 나가는 가장 전형적인 패턴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독서 모임에 지원한 이유를 쭉 들어보면 책을 읽고 싶어서라는 답변이 가장 많다. 그렇다면 독서 모임은 정말 책을 읽으러 가는 곳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까?


사실 모임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계 모임부터, 친목 모임, 취미 모임, 운동 모임 등. 현대사회에서 인간소외가 점점 심해지며 이런 모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어디에선가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 사이의 중간지대를 찾아야 하는데 모임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독서 모임은 책을 매개체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책 자체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데다 유익하다는 인상이 있기에 인기가 많은 편이다. 만약 여기에서 그친다면 독서 모임은 스터디 모임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책이라는 소재와 진지한 토론이 합쳐지면 독서 모임은 생각보다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생각해보자. 누군가와 진지하게 토론했던 적이 언제인가? 아마 대부분은 학교의 토론 수업이나 친구와의 술자리를 떠올릴 것이다. 서열 관계가 확실한 한국 사회에서 토론은 꽤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아예 학교처럼 토론에 관한 강한 규칙을 만들거나, 친구처럼 완전히 평등한 관계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상사와의 회의, 내지는 토론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정해진 정답이 있고 거기에 따라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그래서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다름은 곧 틀림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상황에서 독서 모임은 동등한 관계에서 토론을 이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동체가 된다.


물론 최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가 활발해지며 사회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 부여된 익명성으로 인해 여러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즉 최소한의 예의나 규칙마저 무시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얼굴을 맞대는 독서 모임에서는 이런 일이 극히 드물다.


사실 독서 모임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한 진지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병맛코드도 삶의 활력소가 되지만 삶 자체를 끌고 갈 수 있는 건 결국 진지함이다. 경직된 사회 분위기 탓일까, 진지함은 금기시되고 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려면 터져 나오는 웃음과 삐딱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웃음이든 진지함이든 어느 한쪽이 결여되어 있는 삶은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어있다.


독서 모임을 단순히 책을 읽으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조금 마음을 더 열어보자. 책은 그저 수단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좋은 사람들, 번뜩이는 생각, 진지한 토론에 더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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