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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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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7. 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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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한때 세상은 <공산당 선언>으로 인해 반으로 갈라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사회로. 두 세력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사이에 높은 장벽을 세웠다. 베를린 장벽 같은 물리적인 벽과 심리적인 장벽을. 소련도 무너지고 공산주의의 실험이 실패하면서 <공산당 선언>은 잊혀 갔다.


한국 사회에서 <공산당 선언>은 오랫동안 금서 취급을 받아왔다. 반공 사상이 강한 데다 자본주의의 끝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념에 관한 한 한국 사회는 미국을 충실하게 모방했다. 경제체제로는 자본주의를, 정치체제로는 민주주의를, 종교적으로는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당 선언>은 그저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이 읽는 책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학생 모임에서는 어김없이 <공산당 선언>이 나왔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 공산주의의 실험이 실패했다면 <공산당 선언>을 집어들 이유가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공산당 선언>만큼 자본주의를 잘 분석하고 비판한 책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자본주의 이념만이 유일무이한 체제라고 믿는다면 더더욱 이 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가진 모순 탓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예언 덕분에 자본주의는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었다. 냉철하면서도 뜨겁게 펼쳐지는 <공산당 선언>의 논리를 한번 따라가 보자.





<공산당 선언>을 쓴 칼 마르크스는 독일의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마르크스의 생가가 있는데 지금은 그를 소개하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시내 중심에는 칼 마르크스의 석상도 하나 서 있다.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왜 많은 노동자가 고통받고 있을까? 그는 <공산당 선언>을 통해 철저히 현실적인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이를 분석했다. 사실 이 책은 '선언'임과 동시에 현실에 관한 명쾌한 '분석집'이다.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역사는 항상 지배자와 피지배자,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투쟁으로 점철되었다. 한때는 왕이나 귀족, 성직자가 그 역할을 했고 지금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억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생산수단의 유무다. 자본가, 즉 부르주아는 생산수단을 보유하며 스스로 부를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는 생산수단이 없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산당 선언>은 말한다. 개인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국가에 의한 공동소유로 전환해야 한다고.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대답한다. 사적 소유를 무한정하게 허락하는 순간, 모든 부는 부르주아가 독점하게 된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프롤레타리아는 간신히 살아남을 정도의 임금만 받고 착취당한다. 공산주의는 사적 소유의 폐지를 통해 도리어 소유를 되찾게 해준다.





<공산당 선언>은 계속 이어간다. 만약 부르주아에게 모든 부가 집중되고 사회적인 모순이 쌓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세상, 즉 공산주의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은 명확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 결말을 잘 알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영국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곳은 농업 국가인 러시아였다.


소련의 붕괴를 시작으로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모두가 평등해야 할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이 모든 실권을 쥐고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북한 정도이다. 그마저도 주체사상이라는 왜곡된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왕조국가로 전락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축배를 들었다. 공산주의와 맞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승리의 공은 일부 공산주의에 가야 맞다. 공산주의 세력의 무서운 성장에 놀란 자본주의 국가들이 연이어 '공산주의적인'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토목 공사를 일으켰고, 유럽에서는 강도 높은 노동법이 제정되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사라졌을지언정 그 정신만은 살아남은 것이다.





<공산당 선언>이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를 더 오래 지속시킨 이유이다. 비록 마르크스의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은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책도 엄연한 한계가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현실에 기반해 자신의 사상을 구축했다. 막상 현실은 다르게 돌아갔다. 공산주의는 공산당 독재, 생산성 저하, 억압적인 사회를 낳았고 결국 폐기되었다.


게다가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 같은 기계가 등장하며 이제 프롤레타리아는 아무런 가치도 생산하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만약 노동이 아무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마르크스의 분석은 무의미하다. 동시에 인류는 인터넷 플랫폼이라는 유례없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되었다. 얼마든지 부르주아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렇지만 <공산당 선언>의 외침은 아직 유효하다. 아무리 돈을 모아도 집 한 채 사기 어렵고,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갖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말이다. 한 번이라도 이런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면 <공산당 선언>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그렇게 조금씩 다른 대안을 찾을 길이 열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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