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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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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7. 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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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기억


사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내가 가장 먼저 접했던 작가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물론 그전에도 동화책이나 만화책은 읽었지만, 작가를 신경 쓴 적은 없었다. 집 근처에 있던 조그마한 마을 도서관에서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처음 만났고, 내 인생은 그렇게 조금 달라졌다.


가장 먼저 집은 책은 그를 한국에 처음 알린 <개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어린 나는 두꺼운 책을 읽으며 지적 허영심을 한껏 누리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개미>는 최적의 먹잇감이었다. 그렇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하나 읽었다. 묘한 책이었다. 비록 시점이 교차하긴 하지만 사람이 아닌 개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선한 접근이다.


베르나르는 <아버지들의 아버지>,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으로 이야기를 쌓아가더니 <신>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실하게 구축한다. 이는 비단 소설 내에서의 세계관이 아닌 그가 생각하는 사후세계를 비롯한 모든 것이 담긴 그릇이었다. 마치 <어벤져스>를 보듯 지금까지의 모든 플롯이 이어져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이때까지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신>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반짝임이 없었다. 특유의 상상력과 위트 넘치는 문체도 그대로이건만, 왜 그랬을까? 사실 이는 베르나르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그의 작품을 닥치는 대로 다 읽어댄 탓이었고, 다른 좋은 책도 많이 접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그는 나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갔다.


그러다 최근 서점을 들렀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신작인 <기억>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그의 작품을 매번 베스트셀러에 올려주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에 대한 나의 기억은 <제3 인류> 이후로 멈춰져 있었다. 책을 집어서 몇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역시나 예전 같은 떨림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는 나의 기억에서 그를 보낼 시간이 온 것인지. 괜히 슬퍼진다. 조용히 책을 내려놓았다.


작가로서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그의 작품을 좋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해리 포터>가 그랬듯이 위대한 작품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져간다. 적어도 내 기억에서는 그렇다. 어디에선가는 베르나르를 좋아해 주는 수많은 팬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의 생존(?)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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