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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시리즈>의 소설 같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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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7. 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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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시리즈>의 소설 같은 현실


<밀레니엄 시리즈>는 스웨덴 출신의 기자인 스티그 라르손의 데뷔작이자 유작이다. 총 1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그의 생전 3부까지 출간된 추리소설 시리즈다. 밀레니엄이라는 잡지사를 창간한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천재 해커인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은 스웨덴의 사회현실을 비판한 좌익운동가였다. 극우단체에 살해 협박까지 받았고, 애인과는 혼인신고조차 올리지 못했다. 이런 현실을 고발이라도 하듯 <밀레니엄 시리즈>는 성폭력, 각종 비리 사건, 증오 범죄, 차별과 억압 등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흔히 선진국의 전형으로 느껴지는 스웨덴에도 여전히 이런 문제가 있나 싶었다. 주인공인 미카엘은 이러한 작가의 페르소나로서 진정한 언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페미니스트이자, 성소수자이자, 천재 해커이자, 사회 부적응자인 리스베트라는 인물은 <밀레니엄 시리즈>의 팬덤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미카엘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사건을 해결해나가고 특유의 천재성을 가감 없이 발휘한다. 나 역시도 이 전에 없던 캐릭터에 푹 빠져 이 두꺼운 소설을 단숨에 완독했다. 여기까지가 <밀레니엄 시리즈>에 관한 내 예전 기억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밀레니엄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인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보게 되었다. 왜 이제 와서 이 작품이 나오게 된 걸까 궁금해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치 소설 같은 현실을 알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원작자인 스티그 라르손과는 전혀 관련 없는 소설이다. 생전에는 연을 끊고 살던 라르손의 아버지와 동생이 전문작가를 고용해 네 번째 소설을 창작한 것이다. 현재는 4권과 5권이 나와 있으며 6권까지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이들은 스티그 라르손의 사후 <밀레니엄 시리즈>의 저작권을 상속받아 막대한 수입을 챙겼다.


제4번째 작품의 판권은 스티그 라르손의 애인인 에바 가브리엘손이 가지고 있다. 라르손의 유족들은 이 판권을 양도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패소했다. 그래서 출판사와 협의하여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라는 작가에게 <밀레니엄 시리즈>의 후속작을 맡겼다. 소설 자체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화가 되어 생기는 판권 수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일화를 알게 되어서였을까, 소설 자체도 더 이상 읽기가 힘들어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나온 영화도 시원치 않은 평가를 받으며 조용히 묻혔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현실이 소설 감상을 방해할 만큼 대단한 일일까? 소설은 소설이지 않은가?


물론 라게르크란츠가 집필한 <밀레니엄 시리즈>가 오리지널리티가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캐릭터는 그대로 등장하고, 유작으로 끝나버린 <밀레니엄 시리즈>의 명맥을 살린다는 의미가 있지 않은가?


글쎄, 독자들은 작품을 볼 때 단순히 텍스트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그 글을 쓴 작가의 사상과 배경, 현실, 그리고 유산을 함께 본다. <밀레니엄 시리즈>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캐릭터나 플롯 덕분도 있겠지만, 생전 마치 미카엘과 같은 행보를 보여준 스티그 라르손에 대한 헌정일 것이다. 게다가 그의 생전에는 소설이 주목을 받지 못했기에 안타까움이 더 크다.


물론 누군가는 소설 자체의 재미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도 나름의 감상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을 포함한 컨텐츠에는 이를 둘러싼 맥락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맥락은 현실의 여러 이슈와 맞물려있다. 누군가 성범죄를 저지른 가수의 노래를 즐겨들으며, 노래는 노래일 뿐이라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무리 목소리가 좋더라도 도저히 예전같이 감상할 수가 없다. 내게는 <밀레니엄 시리즈>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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