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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 불편함만이 나를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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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7. 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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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 불편함만이 나를 성장시킨다


<지대넓얕> 시리즈를 통해 묵묵히 지식을 전하던 채사장이 이번엔 자신의 성장기를 들고 왔다. <열한 계단>은 자신을 성장시킨 11개의 순간을 소개하며 이를 계단이라고 부른다. 사실 계단은 불편함을 내포하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오롯이 나의 두 발로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이 되면 오르길 멈추고 그저 현재에 머무르거나 아예 과거로 회귀하기도 한다.


<열한 계단>은 그래서 두 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책이다. 하나, 채사장이라는 개인 의 성장기. 둘, 그렇게 성장한 작가가 깨달은 진리의 방향성. 불편함만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믿으며, 또 그렇게 살아왔던 나로서는 이 책이 그래서 유난히 더 반가웠다. 비록 같은 인생은 아닐지언정 비슷한 길을 걸어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아서다. 


채사장이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죄와 벌>을 완독할 무렵, 난 집 근처에 있던 마을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문학을 접했다. <열한 계단>에 따르면 그렇게 첫 번째 계단에 발을 들인 것이다. 그 뒤로 크고 작은 사건을 마주하며 나 역시 성장해갔다. 그리고 회사에서 무언가 막혀있다는 느낌을 받는 요즘, <열한 계단>을 다시 펼쳤다. <열한 계단>은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1. 불편함만이 나를 성장시킨다.


사실 <열한 계단>은 그 자체로 엄청난 진리나 깨달음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채사장의 개인적인 경험과 특유의 넓고 얕은 지식이 어우러져 묘한 불편함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나를 성장시킨다. 채사장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담담히 증명해낸다.


그는 인생의 분기점마다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과감히 낯선 분야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사실 익숙함에 몸을 뉘고 싶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사람은 어느 순간 사상의 지평을 제한하고 그 안에서 더 깊어지거나 혹은 머무른다.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 안에서, 유물론자라면 과학 안에서, 세속주의자라면 현실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그러면서 담장 밖에 있는 다른 분야를 배척하기까지 한다.


만약 내가 기독교인이면서 자본주의와 애국심의 가치를 믿고 있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그런 사람으로서 평생을 살다가 죽을 것이다. 다른 생각,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말이다. 즉 무신론,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불교 등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애초에 무시한 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내 사상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또 다른 계단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 계단이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높은 그 어딘가이리라.


<열한 계단>은 분명히 말한다. 그런 불편함을 감내하고 기꺼이 마음을 열어야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고. 사람은 평생 자아 속에 갇혀 사는데 그 자아를 조금이라도 넓혀야 한다고.



2. 나는 세계다.


그렇게 열한 개의 계단을 오르게 된 채사장의 결론은 단순하다. 자아가 곧 세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론은 그의 다음 저서인 <지대넓얕 제로>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자신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던 작가가 도달한 목적지가 결국 자기 자신이라니. 이는 모순적이지만 가장 큰 진리 중 하나를 내포하고 있다. 세계란 그저 자아가 해석한 결과이며 그 자체로서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실은 원자들과 에너지의 조합이건만, 자아는 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선도 악도, 자아도 세계도, 삶도 죽음도, 좋음과 나쁨도 결국 마음에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이 굉장히 불편할 사람들이 있으리라 본다. 이런 깨달음이 성장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열한 계단>은 이 명제를 궁극의 경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복잡한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시선으로서 제시한다.


이를 매 순간 체화하며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말했듯 사람은 감각체계로서 현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감각체계가 말하는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어쩌면 이 자체도 궁극적인 진리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세상에 너무 집착하고 자아에 너무 집착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이 불편한 진실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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