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없는 글입니다.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 픽사의 이 시국 영화
연차를 쓰고 쉬려다가 간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픽사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이 개봉했기 때문이다. 원래 2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시국 탓에 6월 17일에서야 스크린에 걸렸다. 극장에 사람은 거의 없고, 티켓을 확인해주는 직원 없이 바코드 리딩 기계만 앞에 놓여 있다. 코로나 사태가 무인화, 언택트 트렌드를 더욱더 강하게 앞당긴 것 같아 씁쓸하긴 하지만 우선 영화를 즐기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은 픽사다운 영화였다. 재치 넘치고, 플롯이 단단하고, 멋진 영상미에 교훈까지 겸비한 웰메이드 영화다. 선택지가 많지 않은 이 시국이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시국 때문에 영화관을 찾기가 어렵겠지만.
하지만 개인적으로 <월 e>, <인사이드 아웃>, <업>같이 픽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작품을 생각해보면 조금 부족하다고 느낀 것도 사실이다. 오해는 말길. 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들어졌다. 픽사답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으니까. 다만 <온워드>의 경우 어른보다는 가족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진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픽사의 <굿 다이노>나 <카>도 그랬으니 이런 비판 아닌 비판이 조금 가혹할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픽사의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된 나로서는 가슴이 찡하면서도 머리를 얻어맞는 그 유쾌한 경험을 바라고 있었다.
사실 이 시국 외에도 영화 <온워드>는 이른바 성 소수자 캐릭터의 등장으로 이슈가 되었다. 사실 영화에서는 아주 잠깐 지나가는 부분이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 일로 중동의 몇몇 국가에서는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내에서도 보수단체의 반발이 있었다. 그만큼 아직도 이 문제가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는 방증이다.
사실 디즈니가 성 소수자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은 처음이 아니다. 디즈니의 <겨울왕국>이나 <토이 스토리>에서도 성 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한다.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 <Out>은 아예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물론 일차적인 이유는 관객층의 확대에 있을 것이다. 유색인종 주인공을 앞세운 <알라딘>이나 <뮬란> 같은 작품의 행보를 그대로 밟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작품에 담아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으리라. 활짝 문을 열고 새로운 이야기가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 그래도 우울한 이 시국에 스크린에서나마 자유롭게 노닐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외적인 문제 따위 잊어도 좋다. 픽사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를 보면서 간만에 작품에 온전히 빠져 즐길 수 있었으니까. 이게 바로 영화관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함이 아닐까? 넷플릭스처럼 중간에 끄고 나갈 수 없으니 억지로라도 나를 붙들어주니 말이다. 눈치 보지 않고 영화관을 당당하게 찾을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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