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노래와 마살라
디즈니 영화인 <겨울왕국 2>는 1편의 <Let it go>로 히트를 치더니 다시 한번 <Into the unknown>, <Show yourself> 등의 OST를 성공시켰다. 오죽하면 <겨울왕국>은 <Let it go>를 위한 1시간 49분짜리 뮤직비디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어쩐지 본말이 전도된 감은 있지만 흥행에도 성공했다.
사실 디즈니 작품에서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가 OST로 등장하는 건 흔한 일이다.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 같은 디즈니 초기 영화부터 현재의 <겨울왕국 2>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픽사의 제품에는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코코>에서 그런 장면이 연출되었다. 애초에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라 그런 모양이다.
디즈니의 이러한 뮤지컬 영화 같은 연출은 이제 그들의 정체성이 되었다.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가사에 담아 노래하고 화려한 화면 속에서 이를 극적으로 끌고 간다. 다만 최근에는 이런 연출에 대해서도 나름 자기반성을 하는지 <주토피아>에서는 이런 대사를 등장시킨다.
"노래를 부른다고 꿈이 마법처럼 이뤄지지는 않아"
- 영화 <주토피아> 중 -
대사에 걸맞게 작중에는 주디나 닉이 부르는 노래가 등장하지 않는다. 꿈은 노래나 이상주의가 아니라 결국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경찰이 된 주디에게 걸맞은 연출이다.
하지만 여전히 OST 노래는 디즈니 작품의 분위기, 메시지, 주인공의 성격과 매력을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 된다. <겨울왕국>에서 엘사는 자신의 힘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억압적인 과거, 힘에 대한 두려움, 이제 그 두려움에서 해방되겠다는 감정을 <Let it go>에서 아낌없이 분출한다. 노래는 서사보다도 더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한다. 그래서 유치하거나 뜬금없다는 혹평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런데 <맘마미아> 같은 뮤지컬 영화를 제외하고도 디즈니와 같은 행보를 보이는 작품이 있다. 바로 발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인도 영화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세 얼간이>나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면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 춤과 노래가 등장한다. 마치 디즈니 영화와 유사하게 자신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가사에 담고 이를 화려한 배경과 함께 뮤직비디오처럼 엮어낸다. 이른바 '마살라'라고 부르는 연출법이다.
마살라는 인도 커리에 들어가는 향신료를 뜻하는데 보통 여러 종류를 섞어 다채로운 맛과 향을 낸다고 한다. 인도 현지에서는 마살라가 들어가지 않으면 굉장히 지루한 영화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마치 향신료가 빠진 커리와 같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 마살라가 뜬금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야기를 전개하다 말고 갑자기 춤을 추면서 하늘을 나니 말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정식 개봉한 인도 영화를 보면 마살라 장면을 빼는 경우가 많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겨울왕국>에서 <Let it go>를 빼거나 <알라딘>에서 <A Whole New World>를 제외한다고 상상해보라. 이들이 보여주는 장면 역시 비현실적이지만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결국 문화 콘텐츠의 확장성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디즈니 OST 노래는 미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될 수 있지만, 인도의 마살라는 현지에 머문다. 이것이 서양화의 무서움이다. 특히 미국은 할리우드를 기반으로 영화, 뮤지컬, 팝송 등의 영역에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영화의 경우 자국 시장을 지켜내는 국가는 미국을 제외하면 한국과 인도 정도다.
사실 미국의 문화는 인도만큼이나 이질적이다. 하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이를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니 같은 아시아권에 있는 인도보다도 서양 내지는 미국의 문화에 더 익숙해진다. 이제 아시아인도 서양식으로 사고하고 서양식으로 소비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중국의 자국 중심주의나 인도의 마살라가 뜬금없고 심지어 우스워 보이는 것도 결국 서양 중심주의에 익숙해져서다. 만약 이슬람 문명이 세계를 지배했다면 강남에서는 최신 히잡 패션이 유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양이 세상을 제패했고 나머지 절반은 이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역시 잘 교육된 서양인이 되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디즈니 노래를 보이콧하며 마살라나 판소리를 부르자는 게 아니다. 서양을 필두로 한 세계화가 문화적 이질성을 줄이고 다른 국민 사이에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서양의 손을 들어 주었고 이는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떻게 중국의 시골 소녀도 <Let it go>를 부를 수 있게 되었는지 알 필요는 있다. 다행히 한국은 그 힘을 깨달아가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연일 인기몰이를 하는 K-pop이나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은 그 신호다. 그렇게 우리만의 디즈니 노래를 부를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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