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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은 최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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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5. 1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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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은 최적화다


만약 누군가 "경영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사전을 찾아보면 경영이란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인적·물적 자원을 결합한 조직, 또는 그 활동'이라고 나온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한 문장을 단 하나의 단어, 최적화로 줄일 수 있다. 경영이란 결국 최적화다. 경영학과를 졸업하며 머릿속에 남은 단 하나의 결론이었다.


이는 경영학과의 커리큘럼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루트를 택하든 경영학의 끝에는 항상 그래프와 수식이 등장한다. 심지어 숫자와는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인사(HR)나 크리에이티브 영역도 마찬가지다. 경영은 결국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의사결정의 모음집이다. 그리고 그 의사결정의 기준은 숫자가 최적화되는 지점에서 나온다. 물론 인재를 알아보는 힘이나, 창의적인 광고 문구는 숫자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종국에는 숫자의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다.


면접관은 분명 자신의 직관과 경험을 토대로 지원자를 선발할지 모른다. 카피라이터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인문학, 심리학적 아이디어를 이용해 광고 카피를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숫자의 검증을 받지 못한다면 정당화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 지원자가 다른 지원자에 비해 단순히 인상이 좋다는 이유로 채용하거나, 엄청난 비용이 드는 광고 캠페인을 마구잡이로 기획한다면 어떤가? 경영은 분명 예술이나 직관의 영역과도 친하지만, 종국에는 청구서를 들이댄다. 면접관은 직무 역량을 점수로 만들어 CEO에게 보고해야 하고, 마케팅부 부장은 비용과 기대효과를 계산해 결재받아야 한다.



물론 이는 몇 가지 이유에서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내가 만약 스마트폰을 판다고 치자. 나에게 있어 최적화는 결국 최소비용으로 스마트폰을 공급받아 최고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비용과 가격 사이의 비율인 마진율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현실에서는 다르게 돌아간다.


우선 최소비용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스마트폰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여러 공급자 중 최소가격으로 받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가격을 탐색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돈이든, 시간이든, 체력이든 말이다. 만약 공급가를 100원 인하하기 위해 10,000원을 쓴다면 어떤가? 적어도 스마트폰을 100대는 팔아야 그 돈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가격이 최저가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어느 지점엔가는 타협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가격을 올릴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스마트폰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만약 아니라면 결국 내 옆 가게와 경쟁을 펼쳐야 한다. 가격에 관한 한 경쟁우위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고객에게 스마트폰을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옆 가게의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수요와 공급이 맞는 어느 지점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이는 시장가격으로 정해진다.


이는 이론상으로 결정되는 최적화 지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 복잡하게 돌아간다. 최적화가 힘든 이유다. 자세히 보니 옆 가게는 우리 가게와 가격이 같은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위치도 거의 엇비슷한데 이유를 알 수 없다. 변장하고 그 가게를 찾았다. 알고 보니 그 가게 사장이 동네에 하나뿐인 교회에서 성가대 단장을 맡고 있거나, 고객을 응대하는 사장네 아들이 훈남이거나, 아니면 마스코트 노릇을 하는 비글 세 마리가 손님을 반길 수도 있다.


이는 정량적인 최적화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매출에 영향을 준다. 고객도 사람이다. 더 싼 것도 좋지만 인간적인 매력이나 호감 같은 '감정적인' 신호에도 끌린다. 그래서 기업은 이런 정성적인 최적화를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한다. 좋은 음악, 매력적인 직원, 인테리어, 조명, 향기, 지역사회와의 관계, 이미지 메이킹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직접적으로 제품 또는 서비스와 관련이 없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경영이 숫자에서 감각, 또는 직관의 영역으로 넘어간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경영자들은 심리학자나 뇌과학자, 컴퓨터 공학자, 데이터 분석가와 협업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백화점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고객이 언제 구매를 더 많이 하는지를 분석한다. 고객의 시선, 호흡, 심지어 뇌파를 측정해 결국 정량적인 최적화 지점을 찾아낸다.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뉴로 마케팅이다. 소셜미디어에 대한 데이터마이닝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광고 캠페인을 기획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면접 상황에서도 아예 AI를 도입해 면접자의 기량을 평가한다.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라지만 결국 최적화를 시키고자 하는 경영의 움직임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영의 흐름이 지속할 경우 인공지능에 의한 노동자 대체는 피할 수 없다. 사실 현실적으로 최적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인간 그 자체일 수 있다. 능력 없는 직원이 몇십 년째 고연봉의 직책을 꿰차고 뒹굴거리거나, 그 모습을 본 능력 있는 직원이 때 이른 퇴사를 결정하거나, 어이없는 실수로 매력적인 투자처를 날려 먹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게다가 인간은 각종 법과 규제의 영향을 받는다. 순전히 노동량 대비 노동자 수의 관점에서만 보면 비정규직 양산은 매력적인 대안이다. 일이 몰릴 때는 잔뜩 모집했다가 일이 없을 때 다 털어낸다면 인력과 임금의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법이나 노조 등 여러 요소로 인해 이런 최적화는 굉장히 어렵다.


너무 비정해 보이는가? 그렇다면 경영, 또는 경영학에 대한 비판을 시작할 차례다. 다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게 있다. 경영학은 결국 방법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경영학은 실용학이다. 한마디로 여러 분야에서 가져온 여러 좋은 방법을 모아놓은 학문이라는 말이다. 경영학의 이론이나 그래프 등에 딴지를 걸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그 숫자를 걷어내고 그 안에 서린 욕망을 읽어내는 건 경영학의 틀 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경영학은 그 자체로는 자신이 가진 비정함에 관심이 없다. 물론 경영 윤리, 경영 철학 같은 분야가 있긴 하지만 주류라고 보기는 힘들고, 어쩐지 구색만 맞추는 느낌이 강하다. 결국 심리학, 철학, 윤리학 등 다른 분야의 시선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경영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강력한 우군이 있기에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비판을 받으면서도 결국은 유일무이한 체제로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산주의나 전체주의는 계급이나 민족 같은 다소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근거했지만, 자본주의는 욕망이라는 구체적인 무언가에 의탁해 살아남았다.


누군가는 기업의 비윤리적 경영을 탓하겠지만 그렇다고 기업을 다 없애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경영의 최적화라는 틀 내에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가장 종교적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아람코라는 국영기업을 통해 부를 창출하지, 아람코를 없애고 '칼 혹은 코란'을 외치지는 않는다. 중국의 지도자였던 덩샤오핑도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면서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내지는 경영학적 개념을 받아들였다.


이런 거창한 이야기에 머리가 아프다면 그저 하나만 기억하자. 경영은 결국 최적화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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