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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 선보다 악이 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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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5. 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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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 선()보다 악()이 쉬운 이유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는 라이온헤드 스튜디오가 개발하였으며 신이 되어 부족 내지는 국가를 다스리는 내용의 게임이다. 자유도가 꽤 높은 편이라 게임을 진행함에 있어 여러가지 방법으로 플레이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는 선 또는 악 중 하나를 선택해 원하는 모습의 신이 될 수 있다. 1편은 2001년에, 2편은 2005년에 출시되었으니 고전 게임으로 불릴만하다.


그럼에도 새삼 <블랙 앤 화이트>를 끌고 온 이유는 '신이 되면 어떨까?'라는 질문에 가장 충실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막상 플레이를 해보면 '마음대로' 모든 걸 할 수 있는건 아니다. 사실은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심부름꾼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한 명의 신으로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며 그런 신은 막을 수 있는자는 오로지 다른 신 뿐이다. <블랙 앤 화이트>의 신은 평화를 택할 수도, 전쟁이나 파괴를 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게임의 양상은 크게 달라지게 된다.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된 <니벨룽의 반지>라는 희곡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반지가 하나 등장하는데 마치 절대반지처럼 착용자의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준다. 작중 주인공은 이 반지를 끼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니벨룽의 반지>는 묻는다. 만약 아무런 제약사항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과연 선을 택할 이유가 있을까? <블랙 앤 화이트>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무소불위의 신이라면 악 대신 선을 추구할까? 답을 찾을 방법은 단 하나, 직접 신이 되어 보는 것이다.





<블랙 앤 화이트>에는 두 조언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블랙과 화이트, 음과 양, 선과 악으로 소개한다. 플레이어가 어떤 퀘스트를 수행할때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조언을 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신의 몫이지만.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블랙의 말을 듣는 것이 훨씬 달콤해보인다. 예를 들어 만약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교도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블랙은 이들을 다 죽이고 신전을 부숴 본보기를 보여주자고 한다. 화이트는 이들의 마음을 돌릴만한 선물을 주자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화이트의 조언대로 선물을 순순히 바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이교도가 그 선물만 꿀꺽하고 더 큰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차라리 큰 바위를 하나 들고 와서 다 짓뭉개버리는게 더 낫지 않을까?


이는 실제 게임 플레이에도 반영되어 있다. <블랙 앤 화이트>에서 악의 길은 훨씬 빠르고 직관적이다. 그냥 눈앞의 적을 처부수고 신의 권능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선을 택하면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상대방 신이 군대를 보내도 묵묵히 방어하다가 상대방 부족을 감화시켜야 한다. 보통은 이 방법이 더 오래 걸린다.


만약 내가 절대적인 신이라면,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면 그럼에도 내가 선을 택할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신인 나보다 더 절대적인 규율이거나 자기 자신의 양심 뿐이다. 이렇게 선은 꽤나 추상적인 규칙의 제약을 받는다. 반면 악은 훨씬 직관적이다. 자신의 본능에 몸을 맡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본능은 아이와 동물의 영역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규칙이나 도덕관보다는 즉각적인 충동에 따라 행동한다.


악은 대개 금지하기보다는 자유롭게 풀어 놓는다. 각종 히어로 영화에서 주인공이 악당에게 쩔쩔 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악당에게는 규칙이 없다. 주인공의 가족을 납치하든, 도시를 파괴하든 상관이 없다. 잘 쌓아올린 카드탑을 무너뜨리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대개 제약보다는 자유를 원한다. 선보다 악을 저지르는게 더 쉽다.





그럼 우리 모두 <블랙 앤 화이트>에 나오는 네메시스처럼 악의 화신이 되어야 할까? 오히려 반대다. 선은 악보다 더 어렵다. 더 섬세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분명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블랙 앤 화이트>에서 악을 택하면 플레이어의 땅에는 신음소리와 고통, 죽어가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땅 자체도 칙칙해지고 건물은 폐허가 되어 간다. 악의 길을 걸으면 분명 시원시원하지만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반면 선의 길을 걷게 되면 모두가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며 마을에는 생기가 넘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그런 광경에 한번이라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면 왜 더 어려운 선을 택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블랙 앤 화이트>가 플레이어를 신으로 만들어준 궁극적인 이유가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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