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시간의 플레이 끝에 확장팩을 포함한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를 클리어했다. 꽤 긴 시간이 걸렸다. 2015년에 나온 게임이지만 요즘 즐기기에도 손색이 없는 명작이다. 앞으로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에 관련된 글을 연속으로 써보려고 한다. 게임에 대한 단순 리뷰는 최대한 지양하고, 개인적인 감상평이나 해석 위주로 풀어갈 예정이다. 이미 출시된 지 5년이 넘은 작품이라 GOTY를 몇 개를 받았고, 전투가 어떻고 식의 이야기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더 위쳐3: 와일드 헌트>를 플레이하면서 느낀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해피 엔딩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좀 더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결말은 존재하지만, 그마저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게임 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만약 더 큰 악과 작은 악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겠다." |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는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다른 엔딩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메인 퀘스트 뿐만이 아니라 서브 퀘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게롤트가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생사가 갈리기도 하고, 세계정세가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동화 같은 해피 엔딩은 없다. 2번째 확장팩인 <블러드 앤 와인>에서 동화 나라를 내세운 것은 바로 이런 <위쳐>만의 색깔을 한껏 드러내기 위해서다.
선과 악이 뒤섞이고, 호의가 더 비참한 결말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실에 해피 엔딩은 없다. 대부분은 '더 큰 악'과 '작은 악'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가 위대한 게임인 이유는 입체적인 서사와 더불어 이런 주제 의식을 작품 전반에 녹여내었기 때문이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의 본편을 보자. 언뜻 생각하면 시리를 살리고 위쳐로 키우거나 황제로 만드는 것이 해피 엔딩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리가 위쳐가 되는 순간 닐프가드의 황제 에미르는 딸이 죽었다고 믿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후계자의 공백에 따른 정국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또다시 전쟁과 같은 거대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시리가 황제가 된다면 이는 시리의 자유분방한 본성을 누르게 되는 결말을 낳는다. 과연 어느 쪽이 진정한 해피 엔딩일까?
본편의 중요한 메인 퀘스트인 '피의 남작'은 이런 선택의 양면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고아들을 살리기 위해 정령을 풀어주면 남작과 안나 부인이 사망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살리기 위해 정령을 해치우면 애꿎은 고아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남작의 공백으로 까마귀 횃대는 도적 소굴로 변하게 된다. 그 치밀한 설계와 서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확장팩은 또 어떤가?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에는 두 확장팩이 있다. <하츠 오브 스톤>과 <블러드 앤 와인>이다. 이들의 결말을 보며 마냥 해피 엔딩이라며 만족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블러드 앤 와인>의 결말은 오히려 배드 엔딩이 해피 엔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애인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했지만 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다들라프, 버림받았지만 애인을 이용해 자신의 복수심을 채우고자 했던 시아나.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들 중 최소 한 명은 사망하며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마치 피같이 붉은 와인처럼. 그리고 어떤 결말이든 투생의 선량한 시민들이 죽임을 당했고, 기사들도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는 이토록 잔인한 서사만을 제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게롤트는 선택을 내린다. 설령 그것이 더 좋지 않은 결말로 이어질지라도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 뒷모습에서 어쩐지 모를 희망이 느껴지는건 왜일까? 그런 그가 진정한 영웅으로 보이는 건 또 왜일까?
마블 시네마틱 영화들이 호평을 받은 건 '절대적인 힘을 가진 영웅'을 포기한 시점부터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슈퍼맨>이다. 슈퍼맨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존재다. 빛보다 빠르게 날 수 있고, 눈으로는 총알도 튕겨낸다. 반면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는 절대성과는 거리가 멀다. 분명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만 신적인 존재는 아니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에서 게롤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군터 오딤이나 보이지 않는 장로 같은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에 가깝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는 두 자루의 칼을 매고 달려든다. 해피 엔딩이 아닌, 옳은 엔딩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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