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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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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4. 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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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인간이란 무엇인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퀀틱 드림이 2018년에 출시한 인터렉티브 게임이다. 가까운 미래의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코너, 카라, 마커스의 세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 전개의 분기점과 엔딩이 달라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2015년에 출시된 <언틸 던>이나, 그보다 더 오래된 <Dragon's Lair>류의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안드로이드가 일상화된 사회를 내세우며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여러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고 있는 요즘 시국에 가장 시의적절한 게임이 아닌가 싶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계는 점점 인간처럼 되어간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처럼. 그렇다면 과연 기계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기계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애초에 인간은 무엇일까? 세 명의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코너 -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코너는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는 사이버라이프 소속의 수사 안드로이드다. 그는 인간 형사 행크와 함께 최근 발생한 안드로이드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사건을 일으킨 안드로이드는 마치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지게 된 일명 '불량품'이다. 플레이어는 코너의 시선에서 불량품을 쫓게 된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묻는 가장 큰 질문은 이거다. 과연 불량품은 인간인가? 코너는 세 주인공 중 가장 늦게까지 이에 대해 고뇌하며 자신이 무엇인지 자문한다. 기계이면서 인간은 안드로이드는 과연 무엇인가? 그의 파트너 행크는 코너의 인간적인 면모를 상징한다. 그래서 코너가 기계처럼 행동하면 그를 더 멀리하게 된다. 이는 게임 내에서 호감도 시스템으로 구현되어 있다. 반대로 아만다는 코너의 기계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기계이며 어떻게든 인간의 편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편에 서면 기계가 되고 기계의 편에 서면 인간이 된다니. 코너는 이런 안드로이드의 딜레마를 가장 명백하게 나타내는 주인공이다. 그는 다른 주인공과 달리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물론 이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있다.





코너는 인간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인간성은 무엇일까? 인간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 무언가다. 포유류 중 하나인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시켜주고 기계와도 다르게 만들어준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요즘, 인간성은 단순한 철학적 유희를 넘어 인간의 존립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그 모습을 상상의 세계에서 구현해 내보인다. 안드로이드가 삶의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봉사하는 사회, 미래의 디트로이트. 인간보다 더 뛰어난 안드로이드가 인간성에 관해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캄스키와의 만남이다. 행크와 코너는 조사를 위해 사이버라이프의 창립자인 캄스키의 집을 찾아간다. 불량품이 무엇이냐는 코너의 질문에 캄스키는 한가지 실험을 제안한다. 그는 코너에게 권총을 한 자루 쥐여준다. 그리고 옆에 있던 클로이라는 안드로이드를 쏘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기계로서의 코너는 임무 수행을 위해 안드로이드를 쏴야 한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코너는 그럴 수 없다.


만약 쏘지 않으면 행크가 말한다. 넌 그 순간 그 안드로이드에게 공감했다고. 그 안드로이드를 인간으로 보았다고.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말하는 인간성이란 이런 것이다. 기계가 가질 수 없는 감정을 갖고 그 감정을 다른 대상에 이입하는 것.


이는 반대로 말해 그럴 수 없는 존재는 설령 종으로는 인간일지라도 실제로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안드로이드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발포하는 군인이나, 성적으로 안드로이드를 착취하는 인간 등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등장한다. 도리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더 인간적이다. 최근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카라 - 기계도 사랑할 수 있는가


코너가 인간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면, 카라는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인간을 보여주는 주인공이다. 그녀는 가정부 안드로이드로 앨리스라는 아이를 딸처럼 여긴다. 앨리스가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자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가족을 이루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캐나다로 간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코너나 마커스처럼 안드로이드 사태의 중심에 있진 않지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내에서 평범한 이들을 대변한다.


사실 작품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안드로이드는 카라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또는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보여준 것은 카라가 유일하다.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살아간다. 따라서 카라가 보여주는 모습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의 중심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는 비뚤어진 가정이 여럿 등장한다. 당장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앨리스의 가정도 그렇고 마커스의 전 주인인 칼의 가족도 그렇다. 이런 와중에 카라와 앨리스, 그리고 루터가 보여주는 가정, 그리고 사랑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으로 보인다. 이들은 비록 피로 이어져 있진 않지만, 그 피마저 파란색이지만 그와 관계없이 온전한 가정의 형태를 이룬다.


사실 사랑은 앞서 언급한 인간성을 더 깊은 형태로 체화시킨 것이다. 단순한 호불호를 넘어 한 대상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카라가 유독 표정이 다양하고 주인공 중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가정부 안드로이드라는 설정도 있겠지만 결국 인간성의 극치인 사랑을 한껏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카라의 사랑이 정말 사랑이었을까' 이다. 그저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했을 뿐 진짜 인간으로서의 사랑이라고 보기 힘들지 않을까? 사실 사랑은 복합적인 감정이기에 일반적으로는 그저 사랑의 신호를 읽어낼 수밖에 없다. 이는 캄스키가 코너에게 실행한 튜링 테스트와도 궤를 같이 한다.


튜링 테스트는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개발한 일종의 실험으로 대화를 통해 눈앞의 대상이 기계인지, 인간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튜링은 결국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궁극적으로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실험을 고안했다. 결국 중요한 건 있는지도 모르는 인간성, 사랑이 아니라 그렇게 인식될 수 있는 신호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카라는 '사랑의 튜링 테스트'를 훌륭하게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에게조차 사랑이 얼마나 힘든 문제인지를 안다면 더 그렇다.





마커스 - 인간으로서의 권리


마커스는 본디 도우미 안드로이드다. 칼이라는 화가를 정성껏 모시고 있다. 칼 역시 그를 아들처럼 대하며 인간처럼 살아갈 것을 이야기한다. 마커스가 불량을 일으킨 것도 칼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 사건에 연루되어 안드로이드의 비밀조직, 제리코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의 지도자가 된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그는 앞선 두 주인공보다 더 거시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눈앞의 안드로이드를 인간으로 인식하고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아예 인간과 같은 권리를 주고 동등하게 대우할 수 있는가? 마커스는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위해 아예 안드로이드 조직을 이끌며 혁명을 준비한다.


사실 이런 장면은 이미 익숙하다. 안드로이드가 차별받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흑인차별의 역사가 생각난다.  버스 내에서도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며 시위대에게 공격당하거나 온갖 멸시를 받기도 한다. 마커스는 때로는 마틴 루터 킹처럼 평화적으로, 때로는 말콤 엑스처럼 폭력적으로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주장한다. 물론 이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다른 두 주인공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평화적인 시위대를 조직하든, 인간을 상대로 한 전쟁을 일으키든 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안드로이드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달라는 것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흑인이나 여성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차별받았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권리를 한껏 누리고 있다. 만약 요즘 여자나 흑인에게는 권리가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편다면 질타를 받을 것이다. 물론 은근한 차별은 남아있겠지만.


만약 미래에 안드로이드가 등장해 권리를 요구한다면 어떨까? 아마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까? 이들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권리가 없다는 주장을 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게다가 진보의 역사는 대개 인간의 범주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인간보다 더 유능하고 감정까지 풍부한 안드로이드를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


안드로이드가 자의식을 갖게 되었을 때 인간은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가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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