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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브레이킹 배드> - 인과를 통해 이야기를 끌고 가다

컨텐츠/드라마&다큐멘터리

by 법칙의 머피 2020. 4. 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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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드 <브레이킹 배드>

: 인과를 통해 이야기를 끌고 가다.


모든 드라마를 통틀어 인생작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브레이킹 배드>를 고르겠다. 어떻게 <브레이킹 배드>는 내 인생 최고의 미드가 될 수 있었을까?


이는 사실 '어떤 작품이 명작일까?' 하는 물음과도 맞닿아있다. 서사, 캐릭터, 연출, 주제 의식, 연기 등 이를 결정하는 요소는 정말 많다. 그래서 한마디로 명작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작품이 왜 잘 만든 건지, 그리고 이를 넘어 명작 반열에 오른 것인지를 이야기할 수는 있다.


<브레이킹 배드>는 앞서 말한 요소들이 훌륭하게 갖춰진 드라마다. 색다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카메라 연출,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 매력적인 캐릭터 등. 하지만 역시 작품의 기본은 서사에 있다. 서사는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이자 주제를 전달하는 주요 요소가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브레이킹 배드>는 인과를 통해 서사를 이끌어나가고 주제 의식까지 담아낸다. 인과란 원인과 결과다. 어떠한 원인이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어떤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다른 일의 원인이 되어 계속 이어진다. <브레이킹 배드>는 평범한 화학 교사인 월터 화이트가 마약왕 하이젠버그로 변하는 과정을 비추고 있다.


그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결국 인과를 통해 각 사건을 공고하게 연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행동은 그에 걸맞는 결과를 낳는다는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있다. 월터는 처음에는 치료비를 대려고 마약사업에 뛰어든다. 하지만 중간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 깊이 발을 담그게 된다.





평범한 화학 교사가 마약왕이 되기까지


미국의 한 사막.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베이지색 바지가 바닥에 떨어진다. 캠핑카 한 대가 그 위를 지나간다. 그 안에는 방독면을 쓴 두 남자가 타고 있다. 이내 차는 언덕을 굴러 처박히고 속옷만 입은 남자가 뛰쳐나온다. 콜록거리면서 방독면을 급히 벗어 던진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급하게 총과 캠코더를 챙겨 나온다. 캠코더로 가족에게 영상 편지를 남기더니 사이렌이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총을 겨눈다. 미드 <브레이킹 배드>의 기념비적인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이런 장면을 처음 접한다면 여러 궁금증이 생긴다. 왜 저 남자는 방독면을 쓰고 있을까? 왜 옷을 벗고 있을까? 캠핑카에 쓰러져있는 두 남자는 누구일까? 남자는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쫓기고 있을까? 같은 질문 말이다.


주인공 월터 화이트는 마약 제조사다. 그래서 방독면을 쓰고 마약 냄새가 배지 않게 하려고 옷을 벗고 있다. 그러다 마약을 판매하는 갱과 엮이게 되고 위기에 처하자 이들을 제거한다. 그 과정에서 경찰에게 쫓기게 된 것이다. 또 월터가 집어던진 방독면은 나중에 단서가 되어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다.





<브레이킹 배드>의 서사는 이처럼 인과관계를 통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다. 왜 월터가 중간에 멈추지 못하고 계속 사건에 연루되는지, 어쩌다 종국에는 마약왕 하이젠버그가 되는지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처음에는 그저 암 수술을 위한 치료비를 벌 목적이었다. 자신의 특기인 화학 지식을 이용해 고품질의 마약을 만들어 팔면 그만이다. 그렇게 판매처를 찾다가 크레이지 에이트, 투코, 구스타보 프링 같은 마약상과 엮이게 된다. 월터는 자신의 사업과 가족에 위협이 되는 이들을 다 제거한다. 수동적으로 살아오던 자신의 지난날과도 작별을 고한다. 이제 월터는 더 이상 화학 교사가 아니라 하이젠버그로 살아간다. 


보통 작품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다 보면 개연성이 옅어지기 마련이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후반부에서 좌초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플롯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의외의 결말만 내보이려다 보니 무리수를 둔 것이다. 서사의 개연성으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라 더더욱 아쉽다. 하지만 <브레이킹 배드>는 끝까지 호흡을 잃지 않는다. 무심하게 깔아둔 떡밥도 착실하게 회수하며 감탄을 자아낸다. 낭비되는 장면이나 무리수 없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는 것 같다. 작가인 조엔 K. 롤링은 결말까지의 플롯을 다 구상하고 1권 집필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트러짐이 없고 점점 고조되어 가는 작품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른바 명작이나 수작으로 불리는 작품들은 이처럼 흔들림 없이 서사를 끌어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


<브레이킹 배드>의 주제는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이다. 특히 악행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일종의 인과론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업)가 생각나기도 한다. 월터 화이트는 자존심 때문에 옛 동료의 도움을 거절한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벌기 위해 마약 제조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길을 막는 사람들을 하나둘 제거하는데, 나중에는 그 일을 감추려고 더 큰 범죄에 가담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악행은 악행을 낳는다. 만약 처음부터 치료비를 지원받았다면 어땠을까? 평범하지만 선한 월터 화이트로 남지 않았을까?


그는 반대로 마약왕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가 쓰는 검은 모자와 선글라스처럼 타락해갔다. 하이젠버그로서 그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월터는 작중에서 입버릇처럼 가족을 이야기한다. 가족을 부양하고 지키기 위해 이 모든 일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반 부분에서 월터는 아내인 스카일러에게 말한다. 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그리고 꽤 잘했다고. 월터 화이트는 다름 아닌 자신이 쏜 총알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그를 죽이려 했던 수많은 사람을 해치운 채. 끝까지 자신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다운 결말이다.


하지만 월터의 행동으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간 사람들은 어떤가? 그로 인해 최소 수십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가 유통시킨 마약으로 인해 길거리는 중독자로 넘쳐나고, 마약 구매를 위한 범죄도 자주 발생했을 것이다. 월터의 가정을 포함해 수많은 가족이 흩어지고 상처받았다. <브레이킹 배드>는 분명히 말한다. 월터 화이트의, 아니 하이젠버그의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인과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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