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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킹덤> - 한국이 헬조선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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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4. 1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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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킹덤> - 한국이 헬조선이 된 이유


미드나 영드 일색이던 넷플릭스에서 한국 사극을 내놓았다. 그것도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드라마라니. 신선하다. 사실 사극 좀비물이 처음은 아니다. 당장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창궐>도 있지 않은가. 다만 <창궐>은 흥행과 평론 모두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반면 <킹덤>은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다.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두고 이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조선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비록 시대적인 이질성이 있으나 드라마 <킹덤>의 장면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한국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라서 그런 걸까. 생각해보면 왜 '헬고려'나 '헬신라'가 아니라 '헬조선'일까. 단순히 시간적으로 더 가까워서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수많은 병폐가 조선 시대에서부터 그대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와 군부독재는 전근대적인 문화를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앗아갔다.


그 이후 갑작스레 근대화와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경제력이나 인프라로만 보면 선진국에 들어가고도 남지만, 이 땅의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대체 왜 그럴까? 단순히 애국심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배부른 투정에 불과한 걸까? <킹덤>을 다시 보며 그 이유를 파헤쳐보자.




1. 피를 탐하는 괴물


<킹덤>을 연출한 김은희 작가는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피'라고 밝혔다. 이는 선혈이 낭자하는 컷신, 피에 굶주린 역병 환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동시에 혈통에 집착하는 기득권층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혈통을 중심으로 내려오는 왕정국가이다. 제아무리 권세가 높은 자도 감히 왕의 자리를 넘보지는 못했다. 가장 근본적으로 국가를 유지해온 대전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역사에서 발생한 수차례의 반정도 결국 또 다른 이(李) 씨를 왕위에 앉히는 과정이었다. <킹덤> 내에 등장하는 해원 조씨 가문도 허수아비 왕을 내세웠을지언정 스스로 왕위에 오르진 않았다. 대신 중전을 통해 세자를 낳아 왕권을 잡고자 했다.


혈통, 즉 피의 힘은 꽤 강하게 <킹덤> 내의 인물들을 압박한다. 세자인 이창은 적통의 피를 잇지 못했다는 이유로 핍박받는다. 조범팔은 무능했지만 해원 조씨의 피를 가졌기에 동래 부사가 된다. 조학주 대감은 피가 이어지지 않은 중전의 아이(?)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왕족을 찾으려 한다. 결말 부분에서 중전의 아이가 왕위에 오른 것도 결국 거짓말일지언정 그가 더 적통의 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제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신분제는 사라졌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른바 수저론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계급제를 목도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평등한 나라가 된 줄 알았건만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식은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경주를 시작한다. 그 차이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체제가 부모의 부나 권력에 따라 더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도 무사히 졸업해 대기업에 입사한다. 누군가는 아예 기업을 하나 물려받아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 과정에서 한두 명씩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법 하다.





2.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영화 <내부자들>에서 가장 강렬한 대사는 백윤식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는 정경과 유착하고 있는 유력 일간지의 편집장이다. 카메라는 대사를 하는 입을 클로즈업한다. 한마디 한마디를 귀에 새기라는 듯이. 그리고 영화가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것이 단순히 스크린 속의 현실이 아니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헬조선은 멀리 있지 않았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 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 중     


드라마 <킹덤>에 등장하는 민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그저 착취의 대상, 이용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앞서 언급한 공고한 신분제에 방만한 기득권층이 결합하여 전방위적인 대상화가 이루어졌다. 혹독한 세금을 내느라 굶어 죽는 이가 넘쳐나고, 심지어 전란을 이유로 죽임을 당해 좀비로 변한다. 이들은 기득권층을 떠받들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라고 다를지 모르겠다.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는 한 정책기획관의 말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의 인식이 새어 나왔을 따름이다. 마치 벽장 뒤에 바퀴벌레가 넘쳐나면 한두 마리가 쫒겨나와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듯이. 그 한 마리만 때려잡았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매번 선거철만 되면 각종 포퓰리즘 공약과 아쉬운 소리를 쏟아내다가 당선만 되면 다시 돌아서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영화 <브이 포 벤테라>에서 레지스탕스를 이끄는 브이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국민이 국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그런 국가에서 살아가는 국민의 앞에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마치 <킹덤>의 조선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처럼.


하지만 어찌 기득권층만 탓할 수 있겠는가. 그 기득권층이 마음껏 자신들을 개돼지 취급하도록 놔둔 민중에게도 엄연한 책임이 있다. 이제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가.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신보다 못한 이들에게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헬조선은 결국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3.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는 사회


<킹덤>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고, 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겨야 한다고. 식욕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다. 그 욕구가 충족되질 않으니 먹을 것을 항상 갈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유난히 먹는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아니, 먹는게 아니라 거의 입에 욱여넣는 수준이다.


결국 좀비가 된 조선의 백성들은 식욕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동물은 내버려 두고 사람만 잡으러 다닌다. 이는 결국 서로를 좀먹는 당시의 세태를 상징한다. 애초에 역병이 퍼진 것도 감염자의 인육을 먹어서가 아닌가. 기득권층은 감히 건드릴 수 없으니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수라도를 펼치는 것이다. 마치 <설국열차>에서 꼬리 칸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었듯이.


식인은 인간성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다. 살인이나 강간보다도 더 큰 질타를 받는 거의 유일한 죄악이다. 실제로 <킹덤>에서는 이런 행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만큼 도덕과 인간성이 완전히 무너진 사회였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사람이 굶어 죽는 절대적 빈곤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건 이른바 '먹고사니즘'이다. 단순히 먹고 사는 것을 넘어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인식이 아직도 남아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이 뭐가 나쁘겠냐만은 결국 문제는 그 정도에 있다. 끊임없는 탐욕에 사로잡혀 남을 해치는 지경에 이른다면 드라마 <킹덤>의 괴물과 다를 바가 없다. 역병에 걸려야만 좀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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