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토피아>는 이상적인 유토피아인가?
디즈니 영화 <주토피아>는 동물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도시, 주토피아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주디는 부푼 가슴을 안고 경찰이 되기 위해 주토피아의 문을 두드린다. 뭐든지 할 수 있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주토피아에서 오랜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최고의 디바인 가젤(Gazelle)은 'Try Everything(뭐든지 시도해봐)'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모든 동물은 각자의 체형과 습성에 맞는 사회 인프라를 누린다. 정말 천국이 아닐 수 없다.
주토피아(Zootopia)는 동물원(Zoo)과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다. 영국의 토마스 모어는 SF소설 <유토피아>에서 이 개념을 처음 소개한다. 유토피아에서는 누구도 굶주리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다. 장시간의 노동에서 해방되어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읽어보면 마냥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이후 유토피아는 이상세계를 뜻하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유토피아는 '없는 세계'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작가 본인조차도 이런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주토피아>는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재기발랄한 패러디와 화려한 그래픽, 매력적인 캐릭터가 넘쳐난다. 개인적으로는 디즈니를 다시 보게 만들어준 영화이기도 하다. 단순히 재미있는 가족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마치 픽사처럼 꽤나 묵직한 주제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런 디즈니의 행보가 너무나도 반가울 따름이다. <주토피아>는 묻는다. 주토피아는 정말로 천국일까? 작품에 나오는 세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 보자.
1. 주디 (Judy)
주디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 토끼는 경찰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꿈의 도시 주토피아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경찰학교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해 이 도시에 발을 들인다.
처음에는 뛸 듯이 기뻤다. 예상과는 다르게 후줄근한 아파트에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경찰이 되지 않았는가? 반갑게 동료에게 인사를 건네지만 코웃음을 친다. 그렇게 맡겨진 첫 임무는 주차위반을 단속하는 단순한 일이다. 하지만 이거라도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딱지를 끊는다.
그러다 또 다른 주인공 닉을 만나고 후에 사건에 연루되어 주토피아의 현실을 마주한다. 주토피아는 주디의 기대를 배반하듯 여러 문제가 있는 도시였다. 기회와 평등의 땅인 줄 알았지만,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한 곳이었다.
자연스레 미국이라는 나라가 연상된다. 흔히 미국은 기회와 자유, 평등의 땅으로 여겨진다. 영국의 청도교인은 종교탄압을 피해 아메리카 신대륙에 상륙했다. 자유와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그 이후 미국은 짧은 기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나라가 되었다.
국가는 부유해졌지만, 그에 반해 대중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했다. 빈부격차는 역대 최고로 증가했고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여전히 존재했다. 이 같은 차별은 미국이 자랑하던 기회의 평등마저 앗아갔다. 아버지가 낸 막대한 기부금으로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는 아이와, 슬럼가에서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는 아이는 애초에 같은 '노력'을 할 수조차 없었다.
애플이나 페이스북 같은 실리콘밸리의 전설은 한편으로는 기회를 얘기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소수의 케이스였고, 부의 편차는 더욱 심해졌다. 사람이 많이 필요했던 제조업과는 달리 IT 산업은 극소수의 엘리트가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제 사람들은 아마존의 '무인'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 구글의 '무인'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기도 한다. 아마존은 다소간의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동시에 월마트 같은 기존의 유통체계에서 수많은 사람을 방출시켰다.
2. 닉 (Nick)
닉은 일찌감치 이런 주토피아의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여우는 교활하다는 차별 어린 시선을 받았지만 상관없다. (그런데 사실 닉은 좋게 얘기하면 능글맞고, 나쁘게 말하면 교활하긴 하다) 위생 관념 따위 없는 불법 아이스크림을 팔며 돈이나 벌면 그만이다.
사실 닉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단순히 육식동물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 그 기억은 닉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주토피아라는 도시가 천국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에게 있어 주토피아는 꿈의 공간이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주지에 불과하다. 잠시나마 품었던 기대마저 주디에 의해 (의도치 않게) 배신당하며 그는 다시 시니컬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사람은 누구나 이상적인 기대가 무너지고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친다. 닉은 서민의 삶을 대변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지만 현실과 타협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닉처럼 잘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누군가는 주디처럼 실망에 빠져 살아간다.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천국은 이 땅에는 없다고 말하면서.
3. 벨웨더 (Bellwether)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혁명을 꿈꾸는 법이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 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해서라도 현실을 바꿔야 한다. 라이온하트 시장의 비서 벨웨더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간신히 비서의 자리에 올랐건만 육식동물인 그녀의 상사는 대놓고 면박을 주고 무시한다. 꿈의 도시라고 불리는 주토피아이건만 여전히 차별받는 동물들이 있다. 특히 그녀와 같은 약하디약한 초식동물이 말이다.
주토피아를 어떻게 지상 천국으로 만들 것인가? 간단하다. 육식동물을 몰아내고 초식동물을 위한 도시를 건설하면 된다. 그러자면 명분이 필요했다. 벨웨더는 육식동물의 폭력성을 들춰내었다. 덕분에 두 집단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고 머릿수가 더 많은 초식동물의 발언권이 힘을 얻었다. 이런 계획을 막으려는 주디에게 벨웨더는 말한다. 같이 진정한 주토피아를 건설하자고. 더는 초식동물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저들만 몰아내면 이상세계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어 왔다. 소련의 붉은 군대도, KKK단도, 독일의 나치당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을 계급으로, 인종으로, 종교로 나누고 반대편을 탄압했다. 마치 벨웨더가 손쉽게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을 나눈 것처럼.
잘못된 이상을 품고 있는 사람이 원래 가장 무서운 법이다. 있을 수 없는 것을 자꾸 억지로 현실에 맞추려다 보니 갈등이 생기고 부작용이 일어난다. 그 와중에 벨웨더 자신이 시장 자리에 올랐으니 할 말은 다 한 셈이다. 프롤레타리아 위에 군림해 독재를 일삼았던 공산당원을 생각해보라.
주토피아는 천국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천국이어야 하는가? 벨웨더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지상천국을 건설하려고 하는 일련의 시도는 종종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든다. 천국은 마치 북극성과 같다. 영원히 걸어도 닿을 수 없지만, 방향을 일러준다. 하지만 북극성을 땅으로 끌어내려 집 위에 띄운다면? 상상에 맡기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겠는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저 'Try Everything' 하는 수밖에. 마치 주디와 닉처럼. 그럼 주토피아는 그 이름답게 조금 더 천국에 가까운 도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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