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나시(顔無し)에게 얼굴이 없는 이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일본 여행을 갈 때마다 가오나시 굿즈는 꼭 사온다. 주인공도 아닌데 왜 이리도 매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가오나시는 이름 그대로 '얼굴이 없는' 존재이다. 보통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가면이고, 실제 입도 가면 아랫부분에 붙어있다. 스스로는 말도 하지 못해 누군가를 잡아먹어야만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가오나시는 왜 얼굴이 없는 걸까?
본질을 찾아서
치히로와 가오나시는 온천장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인 제니바를 찾아가기 위해 기차에 오른다. 그 기차에는 역시나 얼굴이 없는 사람들이 타고 있다. 몸도 반투명해 뒷배경이 비칠 정도다. 가오나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마치 배경처럼 그저 뒤에 있을 뿐, 본질이 없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가오나시에게는 한 가지 욕망이 있다. 바로 본질을 찾고 싶은 욕망.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그 이유. 그 욕망은 작중에서 가면으로 표상된다. 가면은 가오나시에서 유일하게 불투명한 부분이다. 하지만 가면은 동시에 몸의 일부가 아니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가면을 썼지만, 여전히 본질에 닿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가오나시는 그 답을 찾아 치히로를 따라나선다. 그저 배경처럼 다리에 서 있던 자신을 인식해준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천장에 들어와 가오나시가 본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다. 끊임없이 음식을 먹어대는 손님들, 그 대가로 뿌려지는 사금, 거기에 달려드는 직원들. 거기에 힌트를 얻은 가오나시는 사금을 뿌려대며 사람들을 모은다. 이들이 가져다주는 음식도 마구 먹어댄다.
가오나시는 치히로를 부른다. 그리고 수많은 사금과 온천패를 눈앞에 흔들며 말한다. 이것들을 가지라고. 하지만 치히로는 고개를 젓는다. 자신은 이 모든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가오나시는 자신의 몸으로 파고들며 말한다. 외롭다고. 물질로도 치히로에게는 닿을 수 없었다. 아직도 본질에 닿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본질은 타인과의 관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오나시가 갈구했던 건 어떤 거창한 철학적 진리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고 관계를 맺어줄 누군가이다. 그래서 조그만 호의를 보여준 치히로를 따라나서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금을 뿌려댄다. 그 과정에서의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미친 듯이 음식을 먹거나 아예 다른 사람을 잡아먹기도 한다.
너의 이름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진정한 관계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하쿠는 절대 자신의 원래 이름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유바바는 계약조건으로 이름을 빼앗는다) 어쩌면 가오나시에게는 그럴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얼굴도 사라진 것이 아닐까? 마치 기차 안에 타고 있던 유령처럼?
이는 마치 '얼굴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같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어 외로워하고, 가면 뒤에 자신을 감추고, 물질적인 욕망에 지배당하고, 파괴적인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가오나시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제니바를 만나 정착하게 된다. 소박하게 뜨개질도 하고 차도 한잔 마신다. 무표정한 가면이 어쩐지 웃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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