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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와 눈먼 숲> & <오리와 도깨비불> -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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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1. 10. 2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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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와 눈먼 숲>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작 <오리와 도깨비불>은 두 가지 시사점을 주었다. 첫째, 전작보다 나은 후속작의 모범사례를 보여줬다. <오리와 눈먼 숲>도 분명 명작이지만 <오리와 도깨비불>은 연출과 조작, 게임성 측면에서 한층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게임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보통 속편이 전편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이른바 '속편의 저주'다. 기존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거나 반대로 부정해버리면 주로 생기는 현상이다. <오리와 도깨비불>은 전작의 장점을 한껏 살리고 여기에 자신만의 색깔과 편의성을 더해 한층 더 뛰어난 작품으로 벼려낸다.

 

그리고 게임을 하던 내내 생각하던 포인트 하나. 바로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거다. 요즘은 덜한감이 있지만 게임은 예술은커녕 유해물 취급을 받는다. 게임하면 폭력성, 중독성 등 폐해가 주로 조명되었다. 사실 이는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에서야 영화제도 생기고 각종 예술영화, 독립영화가 나오며 예술의 한 장르로 받아들여지지만, 영화는 한때 유해매체로 인식되었다.

 

대체 예술이란 뭘까? 유명한 화가가 캔버스에 그린 유화나, 작곡가가 작곡한 소나타만이 예술일까? 사실 예술사는 혁신과 변화의 연속이다. 미술사만 보더라도 고전주의, 낭만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등 혁명가들이 이끈 사조가 존재한다. 사실 예술이란 창작자가 비평가, (자신이 예술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당국이 아니라 수용자가 정의한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인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건 이런 변화의 흐름을 담아낸 결정이었다.

 

 

<오리와 눈먼 숲>과 <오리와 도깨비불>은 훌륭한 영상미, 게임성, 그리고 배경음악을 통해 예술의 경지에 오른다. 비록 요즘 유행하는 소위 AAA급 3D 게임과는 궤를 달리하지만 플랫포머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거의 최고의 경험을 선사한다. 극적인 연출로 담아낸 오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전율마저 흐른다. 물론 사람마다 호불호는 분명 있겠지만 적어도 난 <오리 시리즈>가 분명 예술로 느껴졌다.

 

물론 <오리와 눈먼 숲>이든 <오리와 도깨비불>에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단점없는 예술을 없다. 때로는 그 단점 때문에 오히려 예술이 예술이게 된다. 예술은 결국 인간의 창의성을 담는 그릇이고, 창의성은 본디 결점이 가득하다. 그 결점마다 인간성이 묻어나고 사람에 대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사람은 원래 불완전하고 예술로서 그 불완정성을 내보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로써 완전해진다. 아무런 실수도, 고난도 없이 완벽하게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을 보고 예술이라고 하는 이는 없다. 

 

반면 비록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더라도, 설령 그 고난을 끝끝내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그 속에서 분투하는 이의 인생은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 <오리와 눈먼 숲> 그리고 <오리와 도깨비불>은 완벽함과 불완정성 사이에서 예술이라는 하나의 심상을 남긴다. 피카소의 그림이 그렇고, 바흐의 교향곡이 그러하듯이. 적어도 내겐 차이가 없다.

 

<오리 시리즈> 특유의 동화같은 그래픽과 스토리를 보고 있자니 픽사 영화가 떠올랐다. 꼭 어떤 거창한 주제의식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게임은 내가 주체적으로 그 가상현실 속에서 행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영화보다 더 진일보한 세계다. <위쳐> 시리즈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감동과 전율이 가시기도 전에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한편으로는 앞으로 전개될 가상현실이나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한층 더 깊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활자나 영상 매체는 그 자체로 사람에게 간접경험을 제공하지만 그 자체로 수용자가 행위할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가상의 판타지 대륙에서 용이 뛰어노는 모습을 글로 읽거나 영상으로 볼 순 있어도 내가 그걸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그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받아들일 뿐.

 

게임은 여러 기술과 예술적 감각의 조합을 통해 현존하는 최고의 경험을 제공한다. <오리와 눈먼 숲>에서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오리와 도깨비불>에서 거대 거미와 싸우는 등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 만약 메타버스 세상이 더 활성화되고 현실과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 지경이 된다면 어떨까? 그때 현실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말했듯 '오감으로 느끼는 현실이 현실'이라 정의한다면 그 오감을 제공하는 메타버스 세계와 현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페이스북은 사진과 영상을 이을 차세대 SNS 콘텐츠로 '공유된 가상현실'을 꼽았다.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각종 디바이스를 통해 사용자의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순간 불어오던 바람, 멀리서 흘러오는 향기, 입에서 느껴지는 젤라또 아이스크림의 맛까지 재현할 수 있으면 어떤 세상이 될까? 여기서 더 발전하면 기억 그 자체를 아웃소싱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그런 세계가 온다면 난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한층 더 넓어진 예술의 지평을 끌어안고서. 인류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하루다. 그전까지는 <오리 시리즈> 같은 예술을 찬찬히 맛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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