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위쳐3: 하츠 오브 스톤>은 위쳐3 본편에서 이어지는 첫 번째 DLC다. 악의 화신 군터 오딤과 수수께끼의 인물 올지어드, 깊은 슬픔을 간직한 이리스 등을 내세워 다른 위쳐3 시리즈와는 다르게 압축적인 스토리 전개를 보여준다. 물론 위쳐3 본편이나 <블러드 앤 와인>도 메인 스토리 라인이 존재하지만, 분량이 워낙 방대하고 배경도 다양해 스토리라인이 분산되는 느낌이 강하다. <하츠 오브 스톤>은 실제 플레이타임도 세 편 중 가장 짧다.
<하츠 오브 스톤>은 위쳐 시리즈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흔히 '갑툭튀'(Jump scare)라고 부르는 연출도 있고, 기괴한 (단순히 못생긴 게 아니라) 몬스터 디자인 등 위쳐 세계관 내에서 숨을 조여오는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돋보인다. 특히 올지어드의 환영과 맞붙는 보스전은 위쳐 3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감각적이다. 단일 전투신으로서는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이 작품을 지배하는 하나의 컨셉이 있다면 바로 '멈춤'이다. <하츠 오브 스톤>을 이끌어가는 메인 캐릭터는 크게 3명이다. 앞서 언급한 군터 오딤, 올지어드, 그리고 이리스다. (물론 주인공인 게롤트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이 DLC에서 그는 관찰자에 가깝다) 이 세 인물은 각기 거울, 돌처럼 굳어버린 심장, 그림 속에서 살아간다. 하나같이 움직임이 없이 멈춰있는 상징물이다. 그리고 이들의 '멈춤'은 각기 다른 의미가 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하트 오브 스톤>의 인물들을 따라가 보자.
군터 오딤은 위쳐3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성우의 찰떡같은 목소리 연기, 미천한 장사꾼과 악의 화신을 오가는 이중성 등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위쳐 세계관 내에서도 독보적이다. <하츠 오브 스톤>에서 군터 오딤을 상징하는 건 거울이다. 자신을 '마스터 미러'(Master mirror)로 소개할 정도이니.
그렇다면 왜 하필 거울일까?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있으니 시계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하츠 오브 스톤>을 플레이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선 거울은 좌우가 반전되어 대상을 비춘다. 실제인 듯 보이지만 거울 속의 세상은 현실과 근본부터 다르다. 마치 그럴듯한 거짓말과 환영으로 상대를 속이는 군터 오딤과 같다. 하지만 그게 마냥 거짓이라고 따질 수도 없다. 거울은 어쨌든 나의 모습을 비추고 있으니까. 군터 오딤 역시 없는 말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계약 당사자가 한 말을 비틀어 자신만의 논리를 완성한다.
그리고 거울은 실제로는 멈춰있는 물체다. 움직이는 건 어디까지나 거울에 비친 상(像)이다. 현실을 비추지만 현실이 아니며, 보이지만 없다. 군터 오딤이 거울 속 세상으로 게롤트를 초대했을 때, 그를 무너뜨린건 단단한 거울이 아닌 흐르는 물이었다. 멈춘 시간과 멈춘 세상에서 힘을 발휘하던 군터 오딤이기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하츠 오브 스톤>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축이자 제목의 모티프가 된 인물인 올지어드는 어떨까? 그는 군터 오딤에게 소원을 빌었고, 그 대가로 불로불사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심장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아내 이리스에 대한 사랑도, 인간성도, 시간 관념도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쩌면 살아있다는 말조차 틀릴지 모르겠다.
그는 이리저리 죽음을 피해 다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이 파괴된다. 살아있음은 죽음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죽지 않는 존재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살아있는 존재는 멀어진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상 속에서 영원히 살아간들,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설령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껏 움직이며 숨 쉬는 것이 더 갚지지 않을까? 팔딱팔딱 뛰는 심장처럼 말이다.
아예 박제되어버린 그림 속 세상에는 이리스가 있다. 그림 속 세상은 '멈춤'이라는 <하츠 오브 스톤>의 메인 테마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다. <블러드 앤 와인>의 동화 세상이 병맛(?)을 극대화했듯이 말이다. 마치 고흐의 유화를 연상시키는 그림 속 세상은 죽음으로 가득하다. 시종일관 우울하다. 이는 가슴이 터져 죽었던 이리스의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그녀의 곁에는 계약에 묶여버린 악마들만이 서성이고, 자신을 괴롭히던 트라우마가 과거의 망령이 되어 그려져 있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세 인물은 살았지만 죽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형이 아닐까? 거짓된 모습, 인간성이 결여된 모습, 무언가에 얽매인 모습 말이다. 게롤트는 이들을 하나하나 상대하며 인간성을 회복해간다. 여러 번의 변이를 통해 감정이 사라진 위쳐가 말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하츠 오브 스톤>을 더 빛나게 만든다. 내 기억에 영원히 남을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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