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탓에 한 달이나 개봉이 미뤄졌지만 올해 1월, 드디어 픽사 영화 <소울>이 국내에 개봉했다. 북미 등에서는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일찌감치 스트리밍으로 돌렸다. 아직 한국에서는 디즈니 플러스를 서비스하지 않기에 극장 개봉을 기다렸더랬다. 사실 보기 전에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지난번에 본 픽사 영화 <온워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픽사가 픽사다움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 <소울>은 그동안의 내 갈증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소울>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지만 어른인 나로서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픽사에서 일찍이 <인사이드 아웃>을 연출한 피트 닥터의 작품답게 영화 <소울>은 심오한 주제, 신비로운 영상미, 위트로 가득하다. 전작인 <인사이드 아웃>이 인간의 감정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인간의 영혼과 인생이라는 보다 더 넓은 개념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물론 어린이 영화답게 중간중간 가볍게 다루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주제가 주제인지라 유치하지 않다.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는 중학교 음악 교사로 살아가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선망하던 재즈 밴드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것. 기쁨에 차 집으로 가던 도중 맨홀에 빠져 죽게 된다. 사후세계로 갈뻔했지만 어찌어찌해서 생전세계, 즉 태어나기 전 영혼들이 가는 세상으로 발을 들인다. 그곳에서 그는 태어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시니컬한 영혼 22를 만나게 되고 얼떨결에 그의 멘토가 된다. 다시 지구로 돌아가 재즈 공연을 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보여주는 영상미에 몇 번이고 감탄했다. 실제로 착각할 만큼 뉴욕시를 사실적으로 구현한 것은 물론이고, 사후세계를 표현하는 방식 역시 예술에 가까웠다. 마치 피카소나 칸딘스키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귀를 사로잡는 재즈 음악은 또 어떤가. 픽사의 또 다른 영화 <코코>처럼 대놓고 음악을 표방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주제 의식과 더불어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영화 <소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역시나 주제 의식이다. 사실 이는 픽사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니 픽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소울>의 주제는 크게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이다. 살아가면서 지긋지긋하게 마주하게 되는 바로 그 질문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해 <소울>은 크게 두 가지 대답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는 바로 꿈, 혹은 목적이다. 작품 내에서 주인공 조 가드너는 프로 재즈 뮤지션을 꿈꾼다. 마치 <코코>에서 주인공 미겔이 가수가 되고 싶어 했던 것 처럼. 영혼 22도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해 태어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통상적인 어린이 영화가 취하는 서사구조다. 뭔가 원하는 것이 어딘가에 있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사회나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교훈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화 <소울>은 영화 중반부까지 이런 흐름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조 가드너는 어떻게든 재즈 밴드에서 공연하기 위해 온갖 모험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결말 부분에 이르러 자신의 꿈을 이룬다. 그런데 공연의 흥분이 가라앉은 직후 그는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꿈을 실현했는데 여전히 공허한 느낌, 이건 뭘까? 뭔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니, 이건 뭔가 성취를 이뤄본 어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아닌가. 실제로 배우 짐 캐리도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야 성공이 허무하다는 걸 알게 된다고.
그렇다면 대체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소울>은 또 하나의 대답을 들려준다. 바로 삶의 목적은 따로 없으며 그저 하루하루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페페로니 피자의 맛, 나무에서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 어머니가 쓰다 남긴 실타래. 분명 거창한 꿈과는 거리가 먼 소소한 일상의 물건이다. 하지만 마치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재즈처럼 이런 요소 하나하나가 모여 삶을 이룬다.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 하는 어린이 영화치고는 파격적인 메시지다.
실제로 작중에서는 삶의 목적에 집착하는 이들을 괴물로 묘사한다. 꿈을 가지는 것, 목표를 가지는 것은 좋지만 그것 자체가 인생을 집어삼킨다면 도리어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이 된다. <소울>이 말한다. 매일의 삶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라고. 영화를 보고 나오자 햇빛이 얼굴을 비춘다. 조용한 바람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소울>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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