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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 드라마 <나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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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의 머피 2020. 6. 2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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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 드라마 <나르코스>


<나르코스> 시즌 1, 2가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중심으로 한 메데인 카르텔의 무대였다면 시즌 3은 칼리 카르텔이 주역으로 떠오른다. 에스코바르를 무너뜨린 하비에르 페냐 요원은 이른바 '칼리의 신사들'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메데인 카르텔이 폭탄 테러, 납치, 폭력으로 일관했다면 칼리 카르텔은 더욱 더 교묘한 방법을 취한다. 에스코바르보다 더 큰 규모의 마약 왕국을 건설하고 정부를 매수한 것이다.


페냐는 시즌 3 후반에 콜롬비아 정부와 카르텔 간의 접점을 알아내고 경악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일까? 조금 엉뚱한 발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르코스>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대낮에 길거리에서 총기 난사가 벌어지고, 정부 요원이 살해당하고, 대통령이 카르텔에 선거 자금을 받는다. 그리고 국가가 사실상 카르텔의 지배를 받으며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른바 '정상 국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촛불집회 당시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나온 시민들은 국가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숨 쉬듯이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곳이지만 그 국가가 왜곡되어 투영될 때 국민은 분노와 좌절을 느낀다. 드라마 <나르코스>에서도 대통령과 카르텔 간의 연결고리가 발견되자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국가란 국민'이라며 열변을 토한다. 실제로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국가란 국민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꽤 최근에 등장했다. 직접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던 고대 아테네조차 국민 내지는 시민을 '일정한 재산을 가진 아테네인 남성'으로 규정했다. 그 이후 국가는 오랫동안 국왕 내지는 귀족의 소유였다. 중세유럽의 왕국은 이른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내세워 이런 통치를 정당화했다. 즉 왕의 권위는 신이 내려주었으므로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명성황후가 '내가 이 나라의 국모'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맹자 같은 사상가가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며 백성(국민)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어쨌든 국가는 왕의 통치를 받았다.


그렇다면 애초에 국가는 왜 만들어진 걸까? 토마스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보았다. 이 상태에서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고 약육강식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를 강한 힘으로 억누르고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리바이어던으로 표상되는 국가가 탄생한다. 이는 후대에 존 로크나 루소 같은 사상가에게 영향을 주어 '사회계약론'이 등장하게 된다.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이런 근거를 통해 국가란 국민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이 주장은 국가마다, 사람마다 다른 모습을 갖는다. <나르코스>에 등장하는 콜롬비아를 보라. 콜롬비아는 분명 민주주의 국가다.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삼권 분립도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형식을 넘어 실질적인 차원으로 들어가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드라마에서 하비에르 페냐는 한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콜롬비아를 '마약 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한다. 즉 마약을 유통하는 거대 카르텔에 의해 좌우되는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게 어찌 <나르코스>만의 문제겠는가. 한국 사회도 국가의 역할과 정의가 정립되지 않은 작금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공적인 폭력이 시민을 향할 때, 개인의 인권과 공동체의 안녕이 충돌할 때, 맹목적인 이념 논쟁의 장이 된 선거판을 볼 때 국가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이런 말이 있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정부, 국회의원, 대통령만 욕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이들을 선출하는 건 엄연히 다수의 국민이다. 또한 일상적인 수준에서의 국가를 만들어가는 건 결국 국민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국가란 진실로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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