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괴물일까 - 드라마 <나르코스>

컨텐츠/드라마&다큐멘터리

by 법칙의 머피 2020. 6. 3. 20:18

본문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괴물일까?

- 드라마 <나르코스>


<나르코스>는 마약 거래상을 뜻하는 스페인어에서 따온 말이다. 이는 무대가 되는 콜롬비아의 마약상, 그리고 그중에서도 작품을 통틀어 가장 강한 인상을 준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뜻하기도 한다. 작중에서 그는 실질적인 주인공 역할을 하며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실제 콜롬비아 역사에서 마약왕으로 군림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마 드라마 <나르코스>를 보았다면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너무나도 쉽게 괴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르코스>는 영리하게도 그의 인간다운 면도 함께 비춘다. 마약을 판 돈으로 빈민들을 구제하거나, 가족을 끔찍이 아끼거나, 죽기 전 소소하게 소시민처럼 사는 모습을 말이다.


이는 작품의 전체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나르코스>는 묻는다. "누가 괴물인가?" 마약왕이 된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를 잡기 위해 역시 폭력을 휘두르는 콜롬비아의 경찰? 콜롬비아 내정 간섭을 위해 파견된 미국의 정부 요원? 파블로가 빠져나간 자리에 더 큰 마약 왕국을 건설한 칼리 카르텔? 처음에는 정의감이 불타오르던 주인공 머피 요원도 차츰 '악당을 잡으려면 악당의 방식으로'라는 모토에 고무되어 악행을 묵인한다.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면 자신이 괴물이 된다고 했던가?


마침내 파블로를 사살하고 그의 얼굴을 마주한다. 하지만 머피가 본 것은 괴물이나 악마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저 맨발로 뛰쳐나온 뚱뚱한 중년의 사내일 뿐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본 머피의 얼굴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이게 정말 내가 생각하던 그 괴물이 맞나?



 


<나르코스>는 작중 파블로의 최후 장면에 이어 실제로 그의 죽음을 찍은 사진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장면이 나왔을 때 난 가슴이 철렁해 잠시 드라마를 멈췄다. 환하게 웃고 있는 콜롬비아 경찰 아래 쓰러져 있는 한 사람. 죽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였다. 마약왕으로 맹위를 떨치며 수많은 사람을 죽인 인물의 최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초라했다. 어쩌면 <나르코스>의 모든 서사는 이 장면 하나를 위해 쌓아 올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주 강렬했다.


드라마가 유난히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말년에 공을 들인 것도 나와 머피가 받을 충격을 의도한 것이리라. 파블로는 게릴라군에게 당해 결국 부하도, 가족과도 헤어져 도망 다닌다. 그러다가 다시 고향인 메데인으로 돌아오게 된다. 유일하게 남은 부하의 만류에도 외출을 나선 파블로는 이제 자신을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다 아내와의 통화가 도청되어 덜미를 잡히고, 추격 끝에 사살된다.


괴물에게서 인간다움을 볼 때면 혼란스러워진다. 괴물은 마음껏 미워할 만큼 단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지금껏 내세웠던 '괴물'을 생각해보라. 러시아의 비밀 요원, 중동의 테러리스트, 북한의 군인이 대표적이다. 더 과거로 시계를 돌리면 인디언이나 흑인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제 할리우드마저도 외계인이나, 차라리 백인 악당을 전면에 내세운다. 인간을 괴물로 치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사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를 괴롭히던 괴물 같은 상사가 문득 따뜻한 한마디를 툭 던질 때 그에 대한 증오가 사그라들고 만다. 물론 다음날이 되면 다시 그를 싫어하겠지만 찝찝한 기분이 남는다. <나르코스>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최후를 그리며 의도했던 건, 바로 이 감정이다.





사실 <나르코스>는 드라마 전반에 걸쳐 이미 파블로라는 인물에 대한 상반된 면을 비추었다. 나르코스는 실은 인기 많은 국회의원이자, 자상한 아버지이자, 든든한 아들이자, 사랑하는 남편이었다. 부하에게는 존경받는 보스였고, 빈민가의 로빈 후드라고 불릴 정도로 이들과 가까이 지냈다.


물론 경찰은 이를 가식이라고 폄하했다. 그럴 수밖에. 파블로는 사람을 납치하고, 죽이고, 폭탄을 터뜨리고, 마약을 길거리에 풀었으니까. 누군가를 괴물로 보고자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인간적인 면에는 눈을 감아야 한다. 아니, 오히려 그런 '위선'을 근거로 그를 더욱더 미워해야 한다. 죽이고 싶을 만큼. 이 불편한 진실을 눈앞에 던져놓았으니 그 한 장의 사진에 그토록 사로잡혔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머피가 작중에서 말하는 '마술적 사실주의'처럼 무언가 어긋난듯한 그 사진에 말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