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치킨 캐릭터의 약점
만화나 소설, 영화 등을 통틀어 그 작품 세계관 내에서 최강인 캐릭터를 먼치킨 캐릭터라고 한다. 이들은 거의 신적인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소년 배틀 물이든, 순정만화든, 슈퍼히어로 영화든 간에 한마디로 대적할 상대가 없다. 흔히 말하는 엄친아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대표적으로는 DC 코믹스의 슈퍼맨이나 <원펀맨>의 사이타마, <헬싱>의 아카드를 들 수 있다.
이런 캐릭터는 그 설정상 만들기 굉장히 쉬운 축에 속한다. 한번 최강이라는 타이틀만 붙여주면 서사를 굉장히 손쉽게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서사는 사건을 만나고 이를 해결해가며 전개된다. 그게 남주에게 하는 고백이든, 좀비 아포칼립스든, 전 지구적인 재앙이든 마찬가지다. 이 사건 앞에서 캐릭터는 일정한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은 모종의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먼치킨 캐릭터는 이미 이 흐름이 정해져 있다. 결과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설령 억지로 내용을 전개시키더라도 무리가 없다. 그냥 최강이라서 그랬다고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굳이 귀찮게 3년간의 수련 과정이나 캐릭터의 각성 등 흥미진진한 요소를 넣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 먼치킨 캐릭터는 작가에게 있어 양날의 검과 같다. 분명 이야기를 전개하기에는 매력적인 대안이지만 다양성과 흥미가 떨어진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주인공 외에 다른 캐릭터는 배경으로 전락하고 무색무취의 작품이 되어버린다. 강점이 도리어 약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이들을 다룰 때는 모종의 핸디캡을 넣는다. 슈퍼맨은 분명 최강의 존재이지만 크립토나이트만 만나면 약해진다. 사이타마는 일격에 적을 침묵시키지만, 무명의 히어로에 불과하다. 덕분에 악역이나 조연 등 작품 내의 다른 요소들이 부각되어 미묘한 밸런스를 맞춘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사이타마라는 비빌 언덕이 있으니 굳이 마음 졸이지 않고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약점이 강점이 된 경우다.
DC의 영화인 <저스티스 리그>를 보면서 찜찜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 작품 내에서 슈퍼맨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그는 플래시만큼 빠르고 아쿠아맨보다 강하며 사이보그 같은 초인적인 능력도 있다. 그렇다면 슈퍼맨 외에 다른 캐릭터는 왜 굳이 작품 내에 등장해야 하는가? 그냥 슈퍼맨 혼자 날아가서 보스까지 다 끝내버린다면 편하지 않을까?
<저스티스 리그>의 전작인 <맨 오브 스틸>이나 <슈퍼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에서는 이 문제를 '더 강한 악역'으로 해결하려 했다. 슈퍼맨보다 살짝 강한 악역이 있다면 되지 않을까? 이들의 전투를 표현하기 위해 DC는 도시를 부수고 우주에서도 관측되는 폭발을 넣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지구 자체가 소멸할 처지다.
이는 파워 인플레이션 현상을 불러온다. 주인공 캐릭터가 강해지면 더 강한 악역이 등장한다. 그 악역을 꺾기 위해 주인공은 더 강해지고 그 앞을 더더욱 강한 적이 막아선다. 이런 랠리가 몇 번 이어지다 보면 결국 유치한 전개로 넘어간다. 처음에는 마을을 부수더니 나중에는 지구를 터뜨리고, 나중에는 우주의 존망을 건 전투가 벌어진다. <드래곤볼>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다.
먼치킨 캐릭터는 분명 시원시원하다. 현실의 구질구질한 문제를 굳이 상상 속의 세계에서 또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그런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어떻게든 해결해나가는 캐릭터의 모습에서 더 큰 쾌감을 느낀다. 그들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아갈 때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노트북을 덮고도 이어지는 긴 여운을 만끽하면서.
댓글 영역